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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상은 Jul 27. 2021

제가 왜 국문과에 갔냐 하면요.

 

 초등학생 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아나운서 준비생 시절,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많은 것들을 열거했지만 사실은... 일요일 아침을 열어주는 디즈니 만화동산의 진행자가 아나운서 언니여서.. 뉴스도 하고 만화도 보고 너무 재밌어 보였기 때문에 그 이유였다. 그래서 막연한 동경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언어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책을 더 읽게 되었다. 자연스레 완전한 문과형 인간으로 성장했다. 언어랑 외국어는 너무 재밌었는데 수학, 과학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안됐다.. 그래서 나중에 대학을 가면 무조건 언어 중에 전공을 선택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대학 지원서를 써야 할 시간이 왔다. 사실 가장 공부하고 싶었던 건 영어영문학이었는데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선생님, 저는 영문과를 가고 싶어요.” 말씀드렸더니

“대학을 가면 영문과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공부해야 해. 굳이 영문과를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고 말씀하셨다.


“아 그런가요? 그러면 일문과를 가겠습니다. 일본어는 조금 공부해놔서 수월할 것 같아요.” 했더니

선생님께서 “일본어는 빨리 배운다던데, 다른 공부를 하면서 일본어를 따로 공부하는 건 어때?” 하셨다.


아니 선생님...


“그러면.. 전 중문과를 갈게요. 앞으로 전망도 좋다고 하고 중학교 때부터 배워서 잘할 수 있어요.”

과연 선생님이 어떤 이유를 대실까 궁금했다.

“그래? 중국어는 그럼 이미 잘하네.”


도대체 나를 어디로 보내시려는 걸까.


“그러면... 전 언어 중에 고르고 싶은데 별로 남아있는 게 없잖아요..ㅜㅜ” 했더니

“국어국문은 어때?”


“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국어국문이요..?”

“국문과에 가면 교직이수 기회도 있고 얼마나 재밌는데.”


아 우리 담임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지 참....... 예쁜 말을 하시고 감수성이 풍부한 선생님.

“....... 재밌어요.. 정말?”

(신나 하시며) “응. 너 책 읽는 거 좋아하지? 책 진짜 많이 읽을 수 있고 더 깊이 볼 수 있는 눈이 생겨.”


그렇게 국어국문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정말 책을 진짜 많이 읽게 되었다... 이걸 바라던 건 아니었는데..


 1학년 첫 과제가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생생히 생각이 난다. <허생전>, <금오신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 세 권을 읽고 공통점을 리포트를 써오는 거였다. 일단 과제를 하려면 이 세 권을 다 읽는 것도 일이지만 조선시대 작품과 2000년대 소설에 어떻게 공통점을 찾냐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러운 주제라 입에 담을 수가 없다. 첫 과제를 받고 ‘앞으로가 쉽지 않겠구나, 선생님 대체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셨나요...’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배우면 배울수록 적성에 딱! 맞았다. 생각나는 수업들을 열거해보면 <언어학>, <중세국어>, <한문학>, <훈민정음>, <현대시>, <현대소설>, <한시> 등이 있었는데 특히나 암호해독 같았던 <중세국어>와 <훈민정음> 공부가 재밌으면서 가장 힘들었으므로 아직도 교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새내기를 벗어나면서 ‘국어학’ 파와 ‘국문학’ 파로 나뉘었는데 ‘국어학’ 파와 ‘국문학’ 파는 아직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난 당연히도 ‘국문학’파였다. 국어국문 중에 조금이라도 과학 같은 국어학은 내가 배울 수 없는 학문이었다.. 문학 수업만 찾아들었고 배우면서 가슴이 울렁이는 설렘을 느끼곤 했었다. 현대문학 교수님은 우리를 창경궁으로 데려가서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봐. 그리고 그 감상을 시로 표현해보렴.’하시며 엄청난 창작의 고통을 느끼게 해 주었고 창작에 대해 강의해주시던 교수님은 ‘매주 한 편의 시를 써와 봐.’라고 하시며 우리를 더 고뇌에 빠뜨리셨다. 동기들끼리 수많은 고통 중에 창작의 고통이 제일 괴로운 거라며 웃곤 했었다. 그때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지금 이 글도 더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 포털사이트에 ‘국어국문학과’를 쳐보니

-우리가 매일 접하는 모국어와 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어국문학과는 한국의 모든 학과의 선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고 나온다. 이렇게 생각해주시니 전공생으로서 매우 감격스럽다.


 나는 다시 대학을 간다 하더라도, 혹은 대학원을 간다 해도 주저 없이 국문학을 선택할 것이다. 전공을 공부하며 내가  단단해졌고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고 책을  사랑할  있는 사람이 되었다. 활자가 주는 상상력은 나를  크게 만들고   있게 만들었다. 국어국문학이 나아가 인문학이 취업이 안된다고 무시받으면  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간이고 위에 보시다시피 국어국문학과는 한국의 모든 학과의 선도자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아무튼 국어 선생님이셨던 담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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