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털어놓는 남편 이야기
결혼하고 나서 상냥해졌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시원하면 시원했지 상냥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남편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고맙게도(?) 남편과 나는 조금 다른 성향이다. 나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반면 남편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다. 게다가 남편은 말투도 상냥하고 다정한데 같이 살면서 내가 스멀스멀 물들었나 보다. 결혼 후 내 마음은 더 차분해졌고 안정적이게 되었고 편안해졌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나에게 좋은 영향만을 주고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게 하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데 어쩌다가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걸까.
첫 만남은 한남동 어느 카페였는데 친구들과 자연스레 모인 자리였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남편은 예의가 발랐고 (인정하기 싫지만) 눈길이 계속 가게 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가족들과 식사 약속이 있어 먼저 떠나야 한다고 했는데, 처음 본 사이였는데도 그 말이 내심 서운했다. 그렇게 지금의 남편이 떠나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저 사람 너무 괜찮다.”를 연발했었다.
집에 와서 운동을 하는데도 자꾸만 생각이 나서 남편과 같이 나온 지인에게 “나 아까 그 오빠랑 친해지고 싶어.”라고 무작정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도 내가 궁금했지만 방법이 없어 인연이라면 다음에 또 만나겠지라며 마음을 다잡았단다. 아직도 남편에게 “내가 그렇게 메시지를 안보냈으면 우리는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없었을걸?” 하면 남편은 “인연이었으면 다시 만났을 거야.”라고 속 편한 소리를 한다. ㅎㅎ
요즘 내 친구들은 결혼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누구를 만나야 할지부터, 이 사람이 내 짝이 맞는지까지. 나 역시도 그랬었다. 심지어 몇 해 전만 해도 결혼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기까지 했는데.. 정말 인연은 있고 결혼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모든 것이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말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다들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지금 그 사람이 아니어도, 훨씬 더 좋은 사람이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날 테니까. 조금 마음을 편히 갖고 멀리 바라보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해도 달아날 수 없고 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최명희 작가의 <혼불>이란 작품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인연설은 너무 헛되기도, 막연하기도 하지만 내 경우는 이걸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누가 당신에게로 천천히 오고 있다. 초조해하지 말고 물 한잔 떠서 준비해놓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