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은 Dec 12. 2023

Dream Journal

존 라프만 ⟨드림저널⟩(2016~2019) 

Dream Journal

박상은


Jon Rafman, DREAM JOURNAL 2016 - 2019 - FULL MOVIE

https://youtu.be/PyiSgE4M3vI?si=kQ8aJdIvOZN7wd3W


 꿈은 보통 무의식을 반영한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꿈에서는 '왜'라는 질문을 도통 할 수가 없다. 뚜렷한 목표나 목적을 설정할 수 없이 움직이게 된다. 쉴 새 없이 도망치거나 모르는 이와 섹스를 하거나 현실에서는 명확한 목표 및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행위들이 꿈 속에서는 선행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논리적인 체계가 소거된 상태에서 이뤄진다. 그때그때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다음 대목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거나 그 목표를 잃게 된다. 주의력결핍 행동장애처럼 쉽게 집중할 수 없지만 어떤 것에 매몰되듯 몰두할 수 있기도 하다. 꿈에 중독되는 이들은 꿈을 제어하기 위해 자각몽을 꾸기 위해 연구하기도 한다. <드림 저널>에서 펼쳐지는 여정은 꿈의 매커니즘을 꼭 닮아있다. 조금 멀리서 떨어져서 본다면 <드림 저널>은 선형적 내러티브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여정', '모험'이라고 인식한다. 왜 그런 것이 가능할까? 


 존 라프만은 '우리의 인터넷 경험, 웹 페이지와 하이퍼링크 사이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반영'[1]하여 ‘온라인 서핑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표현’[2]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가 인터넷, 더 나아가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경험은 이제까지 도서나 영화를 보았던 경험과는 다르다. 도서와 영화는 가만히 앉아서 기껏해봐야 책장을 넘기는 행위 정도를 하지만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과 인터넷은 그보다 다양한 ‘제스쳐’를 통해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를 선형적으로 ‘서핑’하도록 한다. 유튜브나 틱톡­­­­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유튜브의 쇼츠를 포함—을 볼 때 묘하게 별개의 영상이 앞뒤가 연결된다거나 썸네일이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연결된다고 느낀 적이 있다. 왜 각각의 영상이 이어진다고 느껴지는 걸까? <드림 저널>에도 각각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그것은 ‘문’이라는 상징을 이용하는 것이다. 영상에는 ‘문’ 혹은 ‘구강’이 등장한다. 심지어는 블랙 아웃 장면이 내러티브 중간에 끼어든다. 보통 까만 화면은 장이 끝났음을 암시한다. ‘문’이라는 상징은 꽤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캐릭터가 문 앞에 서기만 해도 다음 장면과 연결되면, 직접적으로 문을 여는 장면이 없어도 캐릭터가 그 문으로 들어갔다는 것으로 인지하게 된다. 그렇기에 <드림 저널>은 별개라고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의 다발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핸드폰을 사용할 때 여백이 끼어든다. 아주 미세하지만 그것은 영상과 영상 사이에 끼어드는 손가락의 제스쳐일 수도 있고 시각적으로 검은 화면일 수도 있다. <드림 저널>은 우리가 핸드폰에서 영상을 보는 신체의 경험을 영상에 방법론으로 적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드림 저널>은 우리가 보는 것들, 믿고 있는 것—그것은 대게 과학적인 물리법칙과 윤리적 체계—을 붕괴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서사를 잇는 방식과 게임과 웹을 횡단했던 경험을 발견할 수 있다. 대게 현실에서 앞뒤가 설명되지 않은 사건을 겪은 후에 우리는 “꿈만 같았다”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꿈을 꾸는 매커니즘을 잘 설명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찬 영화들, 이를테면 SF장르 영화나 CGI를 잘 활용한 블록버스터 할리우드 자본 영화들을 보고 난 후에 “꿈같다”라고 표현한다. 꿈이라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이미지, 무의식의 이미지이다. 엄밀히 따지면 현실과는 아주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 <드림 저널>은 이것을 잘 활용한다. 도저히 내러티브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의 행징들을 작가는 ‘Dream’이라고 칭하고 이것들의 다발—기록—을 ‘Journal’로써 두 개의 단어를 붙인다. 자는 동안 꾼 꿈을 기록하는 사람들은 자기점검의 차원으로 꿈일기를 작성한다. 혹은 그럴싸한 이야기임으로 지인들에게 들려줄 용도로 적는다. 전자의 경우 꿈이 자기의 내부세계, 즉 무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드림 저널>은 그 누구의 꿈도 아니다. 작가의 꿈도 아니고 우리의 꿈도 아니다. 우리에게 재밌게 들려줄 용도도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꿈은 다편적인 이미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에 연달아서 같은 꿈을 꾸었다는 수기도 적다. <드림 저널>과 가까운 것은 도착적으로 꿈일기에 집착하는 정신증자가 기록한 평생의 꿈일기를 한번에 본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오히려 꿈보다는 현실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그것의 방증은 “꿈만 같았다”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기에 그렇다. 현실의 경험이 연속적이고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는 이유는 우리가 매일 밤마다 ‘암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 때문이다. 어제가 오늘의 인과관계인가? 그런 질문을 마지막으로 <드림 저널>은 던질 수도 있다.


[1] 2023 MIRA Digital Art Festival, Jon Rafman Presents Dream Journal

[2] E-flux Announcements, Jon Rafman: The Mental Traveller

작가의 이전글 <프로이트와 20세기> 제6장 포드주의, 프로이트주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