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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Apr 21. 2023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어느 날 드라마에서 나를 발견했을 때

몇 개월 전부터 우리 회사는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으레 회사가 겪는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다소 버거운 일들이 많았다. 그중 나를, 회사를, 아니..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가령,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일들 말이다.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 

상냥한 사람들이 바보 취급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드라마 <런온>의 마지막 회의 명대사. 근래 회사에는 상냥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 만드는 일이 있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상대방을 (정확하게는 상사에 대한 예의..) 배려하지 않고, 멋대로 재단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재난처럼 찾아왔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해봐도 이게 맞나 싶다가도, 이게 어쩌면 트렌드 일수도 있겠다 싶어서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흘러가듯이 보내는 것도 있었다. 버겁다 싶을 때마다 일기장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넣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다. 


원래 일은 일답게 해야 하니까. 속 터지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앉은자리에서 꾸역꾸역 일을 했다. 그렇지만 10년째 글로 밥벌이 한지 코 앞에 다 왔거늘, 마치 처음인 사람처럼 나는 다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조용히 책상 밑에 들어가 눈물을 훔치곤 했다. 상냥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고작 이런 곳이라는 사실에 조용한 환멸을 느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는 눈가를 꾹꾹 누르며 억지로 타자를 쳤다.


작은 친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주는 깊은 상처들


이깟 사회생활이 뭐라고 이들이 주는 상처에 울고만 있었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여전히 스스로 위로해 줘도 모자란 시간들인데 나는 주저앉아서 울었다. 그러다 문득 그들의 눈동자를 깊이 살펴봤다. 


이유 없이 제공되는 작은 친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내 눈에 담겨있을 때 깨달았던 거 같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감추고, 그 친절이 대가가 될까 피하면서 타인을 자신들의 저울에 올려놓고 이리 뒀다 저리 뒀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같이 그들은 알고 보면 작은 친절을 아주 간절히 바라왔다는 것을. 


내 손안에 놓여 있던 친절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어보면서 나는 다시금 내가 베푼 칭찬을 먹고 악으로 내뱉는 사람들의 입을 쳐다봤고, 지레 겁을 먹고 남을 할퀴는 사람들은 어쩌면 친절이, 호의가, 배려가 무기가 되었을 때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몸짓을 보고 잠시나마 애처롭게 바라봤던 거 같다. 섬세하고 아주 다정한 사람들의 대가 없는 친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들에 대한 내 안타까운 인사였을지도. 책상 밑에서 울면서 나는 하릴없이 다짐을 하고 또 다짐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해야겠다고. 


좋은 건 중요한 걸 못 이기더라고.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선함을 주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아도 제 자리를 지킬 때, 다시 굴러가는 일상들은 너무 소중했다.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 자리에서 다시 일을 하기로 했고, 나는 퉁퉁 부은 눈을 부여잡으며 다시금 집중했다. 좋은 건 중요한 걸 이기지 못하니까. 사람을 좋아해서 많은 걸 이해하려고 했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나와 같은 템포로 가려는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류애를 버리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지키는 일을 나는 잠시나마 1순위로 올렸다. 조그마한 대행사에서 뭘 그렇게 애절하게 하냐고 싶겠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잠시나마 미룬 것만으로도 세상 모든 걸 다 잃은 기분이나 다름없었다. 


극복이란 게 꼭 매 순간 일어나야 되는 건 아니에요.


매 순간 엎어진 기분으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건 일하면서도 알고 있었지만 근래 들어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억지로 일어서는 연습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극복이라는 게 꼭 매 순간 일어날 필요는 없으니까. 드러누워서 어기적 거리고, 지키고 싶은 것만 끙끙거리며 지켜내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나아진다면 그것 또한 극복이니까. 


나는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푸는 일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런데, 3n 년 인생 처음으로 포기했다. 중요한 일을 해내고 싶으니까. 힘들 때마다 <런온>을 틀고 마음을 다시 바로 잡는다. 예전이었으면 울다가도 다시 사랑하고, 해냈어! 라면서 캔디처럼 있었겠지만 이제는 극복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기로 했다. 나는 더 중요한 걸 지켜낼 거니까, 그렇게 지켜내서 다시.. 서서 걸어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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