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길, 마지막 비포장 국도

by 박상하

강릉에서 하남들 벌판을 앞에 두고 일하다가 갑갑해지면 부연동으로 내달린다. 저만치 겹겹 포갠 산들 위로 하늘이 새파랗게 빛날 때도 그리로 간다. 그런 날씨에 방구석에 앉아 좁은 모니터 화면에 얼굴을 박고 일하다 보면 궁상맞게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돈을 벌면 얼마나 더 벌고 일을 하면 얼마나 더 할까. 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일은 춥고 더울 때 난방과 냉방된 방에 들어앉아 열심히 하고, 이런 빛나는 날에는 밖으로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 공자님도 거창한 포부를 늘어놓는 제자들 앞에서 증점(曾點)이 늦봄에 지인들과 강에서 목욕하고 놀다가 노래하며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하자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 않으셨던가.


부연동까지는 강릉집에서 바로 가면 30분, 해안도로로 돌아가면 40분쯤 걸린다. 새로 깔린 길은 고속도로 못지않다. 주변에 비해 길이 지나치게 거창해서 오히려 조금 두려워진다. 전국에 이런 길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받아쓰려면 옛길을 자꾸만 넓히고 굽은 길은 곧게 펴는 수밖에 없다.


부연동 길은 요즘 보기 드문 비포장도로이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 넓이의 소박한 길이다. 가을의 부연동 길은 가슴이 마구 뛸 만치 아름답다. 오래전 K 선생님의 칠순 때 후배 여럿이서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이 길을 찾았었다. J 선생님과도 이 길을 지난 적이 있다. 우리말로는 앞과 뒤 모두 험하고 가파른 고개이므로 ‘전후치’라 부른다 했다.


지난 가을에도 이곳을 찾았다.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낙엽 쌓인 길을 차 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올랐다. 풍경은 혼자인 내게도 충만한 아름다움을 넉넉하게 나누어 준다. 저만치 진고개로 향하는 도로가 붉은 단풍 사이로 굽이치며 넘어간다. 저기 자잘자잘 들국화가 뭉쳐 피어 있다. 주변 풍경을 모두 보고 싶은 욕심에 오히려 눈 둘 곳을 찾기 힘들다. 고개를 넘어 평소처럼 양양쪽으로 향하다가 차를 되돌렸다. 고개 이후 이어지는 마을길도 아름답지만 이 고갯길만은 못하다. 가장 좋은 것을 마음에 담아 두고 싶고 싶었다. 가능한 천천히 주춤주춤 아쉽게 차를 몰았다. 고개에 차를 세웠다. 작은 접이식 의자를 꺼내 앉았다. 바라보고 싶었다. 가장 좋은 때라고 느꼈다면 더 이상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때가 있었다. 나와 함께 한생을 살아가겠다며 프러포즈를 받아준 젊은 날의 아내, 날 보고 바라는 것 없이 웃어준 우리 아이들. 일하느라, 밥을 버느라 그 귀한 때에 그 얼굴을, 그 눈을 오래 들여다보고 마음에 잘 담아두지 못했다. 가장 귀한 것에 시간을 가장 많이 써야 할 텐데 그 반대로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혼자 맞는 이 단풍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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