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공원의 소나무 동산, 허균 허난설헌 생가 곁 경포천길, 남대천변 산책로, 초당초등학교 곁 야트막한 산길. 별 생각 없이 그저 걷다 보면 분명 서울에서와는 다른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일상과 비일상. 일 때문에 도시를 옮겨 살았다면 분명 이런 느낌은 아니었으리라. 강릉은 내게 먹고살고 밥을 벌어야 하는 일상에서 한 걸음 옆으로 벗어난 비일상의 공간이다.
걷다 보면 생각하며 걷는 것이 아니라, 걷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것만 같다.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부르크였지만 현재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가 되어 있는 칸트의 도시에 ‘철학자의 길’이 있고 일본 철학계의 기초를 다진 니시다 기타로 같은 학자들을 배출한 교토에도 ‘철학자의 길’이 있는 걸 보면 사람은 걸을 때 더 창조적이 되고 더 깊은 사유에 이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매입과 매출과 거래처와 업무 인계 같은 일들은 아니다. 내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어울리며 행복했던 기억, 뭔가 잘못해서 두고두고 후회가 남은 씁쓸했던 기억 들이 걸음과 함께 기억의 저 아래에서 떠오른다. 내가 잘 했던 일, 내가 못 했던 일이 떠오른다. 분기되던 길 앞에서 그 길이 아닌 저 길로 들어섰어야 했는데 후회하거나, 이 길로 들어서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살면서 만난 고마웠던 분들이 문득 떠오른다. 덜컥 집을 담보로 잡혀 근무하던 회사를 인수해 내 일을 시작한 이래 마음 편할 날이 별로 없었다. 뭘 잘 모르고 얼 띠지만 분야에 대한 애정과 진심은 뜨거웠던 사회 초년생을 격려해주신 고마운 분들을 여럿 만났다. 지금쯤이면 거개는 은퇴하셨으리라.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여럿이다. 내 진짜 자산은 사실 그런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없어지지 않고 내게 남았다. 내 아이들도 삶에서 그런 고마운 분들을 만나는 복을 누리길 바라고, 그런 고마운 선배가 되는 복을 받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