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일로 밥을 번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 10분 남짓. 속 썩이는 말썽꾼 부하도, 속을 뒤집는 상사도 없다.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면 아무 때고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 낮에 못 다한 일은 밤늦게까지 더 하면 그만이다. 좋은 팔자다.
그렇지만 인간 세상에 살며 밥 버는 일이 스트레스가 없을 리는 없다. 잠자리에 들며 흘려버리려 애쓰지만 이따금 짐을 털어야만 할 때가 온다. 강릉집이 위로가 된다. 대안이 있는 상황과 대안 없이 견뎌야만 하는 상황은 천지 차이다. 비록 그 카드를 꺼내지 않더라도 쓸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쯤 더 견딜 수 있다. 쓰러지지 않고 버거운 언덕을 이럭저럭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소리라도 들어줄 대숲처럼. 강릉집에 한 달에 채 며칠 머물지 못하더라도 저만치 대관령 너머에서 내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집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젊은 시절 꿈에 그리던 근사한 차를 기어코 마련한 후에 차고에 세워 놓고는 너무 바빠서 채 몇 번 타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이 이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 차는 그만을 위해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맞지 않는 전공 때문에 방황하던 학창 시절에 설악이 내게 그런 존재였다. 팍팍한 일상에 시달릴 때 거기 우뚝하게 있을 눈 덮인 설악을 떠올리며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강릉집이 내게 그런 응원이 된다.
여행 그 자체보다 여행 준비와 계획을 더 즐기는 사람도 있음직하다. 갈 곳을 정한 후 들릴 장소와 식당 들을 연결하여 일정을 만들고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날 행복할 것이다. 마치 어린 왕자가 오기를 기다리던 여우처럼. 그렇지만 미리 빡빡하게 일정을 짜다 보면 누군가 이미 살았던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하다 말고 일거리를 싸 들고 그곳으로 떠날 수 있다. 그 생각이 하루쯤 더 도시를 견디게 해준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저녁 먹은 후 바로 떠날 수 있다. 작은 집이 강릉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