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 집과도 헤어지겠지

by 박상하

“40대 이상 선배님들, 무슨 재미로 사시나요?”


이따금 들여다보는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 온 질문이다. 놀랍게도 금세 200개가 넘는 댓글이 줄줄 달렸다. 삶이 건조하다고 느끼던 이들이 그토록 많았던 것이다. 운동한다, 게임한다, 캠핑 다닌다, 술 담배로 위로한다, 책 읽는다, 자격증 준비 등 자기 계발한다, 그저 버틴다, 포기했다, 일에서 재미를 찾는다, 공부한다, 낚시한다, 등산한다, 사진 찍는다, 영화 본다, 골프 친다, 종교를 찾는다 등등. 내가 두 번째 집을 구한 것도 그런 활동의 하나였을까.


30대에는 직장에서 살아남느라 경황이 없어 친구들과 미처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직장에서 겨우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40대가 되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손잡아 줄 주변을 찾는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집 장만하고 직장에서 부장쯤 달고 나면 주변과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뭔가 평생 추구할 일을 찾은 사람은 복되다. 내가 가까이서 지켜본 원로 작가들은 그래서 행복해 보였다. 그들에게 작업을 여전히 처음처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일 것이다. 그들에게 작업은 삶과 하나가 되어 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비록 어떤 때는 조금 부족한 작품이 나오고 어떤 때는 더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만 그들은 늘 작업을 손에서 내려 놓지 않았다.


이런 평생의 일을 찾지 못한 사람은 어찌하면 좋을까. 평범한 초중고교를 나오고 평범한 대학을 졸업하여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은. 삶이 의외로 길어졌다. 예전에는 교수가 대학에서 65세 정년을 마치면 몇 년 지나 일흔쯤 세상을 떠났다. 노년의 삶을 굳이 기획하지 않아도 직장 마치고 뒷정리를 하면 한 인생이 자연스레 마감되었다. 요즘은 여든 너머까지 거뜬히 정정한 이들이 많다.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챙겼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재벌 그룹의 회장들이 보통 사람들이 너끈히 이르는 일흔까지도 살지 못했으니 스트레스 적은 범인들이 장수에는 더 유리한 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것저것 해보며 싫증 날 때마다 다른 일로 옮겨 가야 하나. 그 일을 해보지 않고선 자신과 맞는 지 아닌 지도 알 수 없으니.


누군가가 평생 정성을 쏟아부은 업적이 자녀에게 부담이 되는 경우도 봤다. 유명한 작가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눌려 기가 죽어 시들한 경우도 봤고, 유명 정원을 가꾼 명사의 자녀들이 물려받은 정원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들의 삶은 묻힌 경우도 봤다. 부모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녀들이 기쁘게 이어가면 무엇보다 좋은 일이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직장에서 나와 전업으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매진하는 이들도 봤다. 나는 시간 쪼개어 집 보러 다니는 일이 싫지 않았다. 낯선 동네를 알아가고 다른 사람들 사는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갭투자로 100채’니 ‘월세로 월급 만들기’ 류의 부동산 투자 책들도 십여 권 찾아 읽었다. 몇 채를 사고팔며 소박한 집 하나를 마련하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왔다. 이렇게 계속 재산을 불려나갈 것인가. 집으로 버는 돈은 내 일을 하며 노동으로 버는 돈과는 뭔가 달랐다. 시간은 돈이었고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돈은 돈을 벌었다. 책 읽는 시간, 음악 듣는 시간, 산책하는 시간, 가족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 친구들과 밥 먹는 시간,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 돈으로 환산되었다. 그 시간에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속에서 뭔가가 변하고 있었다. 내 눈빛이 조금쯤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돈은 종교였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는 그에 비해 허탈할 만치 낮았다. 멈추어야 했다. 내가 아끼던 일을 계속하려면 이쯤에서 멈추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돈을 충분히 벌어 그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어떤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멈추어야 했다. 충분히 돈을 벌고 나면 아마도 나는 내 일이 하찮게 느껴져 그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강릉의 작은 집에 집착하지 않으련다. 이곳에서 주변을 더 알아보고 자꾸만 재산을 불려나가지 않으련다. 그저 자연스럽게 보이는 만큼 보련다. 이 소박한 공간에 내려와 머릿속에 바람을 쐬어주고 맑은 공기에 몸을 말리련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련다. 시간은 돈이라니 그 시간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데 값지게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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