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있는 멋진 동네 식당들

by 박상하

우리 식구(食口)들은 요리하기를 썩 즐기지 않는다. 아들아이는 예외다. 다만 요리하기 자체를 즐길 뿐이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반겨 먹지는 않는다. 이 녀석이 계란 요리에 빠진 이후 나와 아내는 한동안 가장자리가 눈 계란 프라이를 매 끼니 먹어야 했다. 적당한 식당이 집 가까이 있어야만 했다. 남들은 바리바리 음식 싸들고 캠핑 가서 종일 바비큐하고 고기 구워 먹다가 돌아온다지만, 우리라면 경치 좋은 곳에 있는 그림 같은 집이라도 매끼니 직접 요리해야 한다면 그냥 서울집에서 뒹구는 편을 택할 것이다.


강릉집에는 걸어 10분, 15분, 차로 5분 거리 내에 식구들이 좋아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이미 이름난 식당도 있지만 동네 손님들을 상대하는 지역 식당들이 섞여 있다. 범위를 넓히면 좋은 식당들이 많겠지만 독자들께서 자신만의 식당 목록을 만들어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집 근처에서 자주 가는 식당들 몇몇만 소개한다. 두 번째 집이 자리 잡은 곳이 어디이건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며 마음 드는 식당을 찾는 것 또한 그 동네와 친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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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당고부순두부 _ ‘고부(姑婦)’는 글자 그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이다. 현 사장님이 시어머님 가게를 이어 운영하고 계신다. 옛 한옥을 개수하여 현재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작은 방도 여럿 있어서 형편이 맞으면 가족이 한 방을 쓸 수도 있다. 여러 해 전 혼자 여행하며 처음 들렀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불쑥 떠난 터라 밥 때를 넘겨 강릉에 도착했다. 홀로 온 손님에게 정갈한 상이 나왔다. 보온통에서 묵어 떡 진 밥이 아니라 밥솥에서 조금 전 푼 뜨거운 밥이었다. 너무 뜨겁지 않은 순두부는 물론이고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흠잡을 데가 없었다. 된장에 삭인 고추, 시큼하게 푹 익은 김치까지 말끔히 비웠다. 마지막 멸치 한 마리를 잘근거리며 뿌듯하고 행복했다. 질펀하게 흐드러진 양 많은 음식이 아니라 소박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다. 오래된 나무 문살에 비치는 오후 햇살이 정겨웠다. 식구들끼리 한 간 짜리 작은 방 - ‘초가삼간’의 그 한 간(間)이다 - 을 차지하고 보글보글 두부전골을 끓이고 앉았자면 옛 한국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려보게 된다. 집 기둥에는 주인이 떠난 빈 제비집이 남아 있다. 강릉에는 아직 제비가 흔하다. 밥값을 치르고 잘 먹었다 인사하고 돌아 나온다. 웃음으로 배웅하는 사장님 눈빛이 총총하다. 인생을 기어이 제대로 살아 낸 분의 얼굴이다. * 지난 해 연말에 산뜻하게 재건축하여 내부를 입식 구조로 바꾸었다. 지붕 아래 제비집이 사라진 것은 아쉽다.

강원 강릉시 강릉대로587번길 17. 033 653 7271.


. 돈자랑 _ 이름처럼 돼지고기 전문점이다. 온 가족이 나서 운영하는 식당이다. 사장님, 사모님, 아드님. 아드님은 몇 해 전 처음 인사했을 때 중고등학생임에 분명했다. 사장님은 고기 다룬 지 이십 년이 넘었다 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손님이 오면 사장님이 나선다. 긴 풍선을 엮어 강아지를 만들고 신기한 작은 장난감들도 손에 쥐여 준다. 사장님식 돼지고기 요리를 내와 굽기 시범을 보인다. 날치 알, 메추리 알에 치즈까지 갖은 재료들이 돼지기름에 노릇하니 한데 구워진다. “눈감고 먹으면 소고기” 너스레와 함께 상에 내는 돼지고기 맛이 좋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맞춰 열심히 일하는 가족을 드물게 보았다. 코로나로 거의 영업이 중단되었던 시기에는 활로를 찾아 새벽 아침까지 인근 호텔과 숙소로 고기를 구워 배달했단다. 이런 가족이라면 어떤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도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일할 날이 올까.

강원 강릉시 강릉대로 463. 033 643 0686.


. 옛태광식당 _ 탕과 찌개가 모두 맛깔스럽지만 우리는 이 집의 소박한 미역국을 좋아한다. 국물이 시원하다. 함께 내놓는 반찬들도 모두 간이 잘 맞고 수준 이상이다. 미역국에 따라 나오는 고등어자반 두 도막, 오징어 젓갈, 무김치 등은 남겨 놓고 일어서기 아깝다. 여름에는 새콤달콤한 물회도 입맛을 돋운다. 코로나 이후로는 아침 점심에만 영업하는 모양이다. 식사 후 한번쯤은 식당에서 동남쪽 언덕 위에 보이는 환선정에 올라 보기를 권한다. 농로를 따라 걷거나 차로 오를 수 있다. 인근 농지와 경포호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강원 강릉시 난설헌로 105. 033 653 9612. 환선정 주소는 포남동 146-3이다.


. 자스민 _ 옛태광식당과 나란히 붙어 있다. 파스타, 부채살 스테이크, 돈가츠 등을 내는 모던한 분위기의 경양식당이다. 아이를 동반한 부부, 젊은 연인 들로 늘 붐빈다. 모나지 않은 음식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식당을 나설 때 늘 기분이 좋다. 가게 밖 입구에는 고양이들이 해바라기하며 뒹굴고 있다. 일하는 분들 모두 친절하다.

강원 강릉시 난설헌로 105. 0507 1309 5887.


. 산촌보리밥 _ 강릉집에서 느긋하게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밥집이다. 인근 직장인, 주민들이 식사하러 온다. 큼지막한 보리밥 그릇에 나물과 채소 들을 고추장과 함께 털어 넣고 숟가락으로 썩썩 뒤섞으면 마음까지 푸짐해진다. 함께 나오는 냉이가 든 된장찌개, 고등어자반 한 도막도 맛깔스럽다. 언제나 기분 좋은 한 끼를 보장한다. 식사 후 잠시 차를 세워 놓고 식당 왼편으로 연당길-춘갑봉길을 따라 걷는 뒷동네 산책도 근사하다.

강원 강릉시 연당길 9. 033 653 8855.


. 하나로분식 _ 포남동 농협 하나로마트 모퉁이에 붙은 분식집이다. 평일에는 하굣길 학생들이 와글거린다. 강릉집에서 혼자 일할 때 점심은 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이곳에서 김밥 두어 줄을 사다가 컵라면을 곁들여 먹곤 했다. 사장님이 늘 웃으며 반갑게 손을 맞는다.

강원 강릉시 산양큰길 29. 010 7750 4053.


. 테라로사 경포점 _ 강릉을 대표하는 카페로 잘 알려진 곳이다. 시원하게 뚫린 큼직한 창 너머 보이는 경포천 수로 풍광이 여유롭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천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쐬며 커피를 마시는 기분도 각별하다. 2층에 출판사 한길사가 운영하는 서점이 입점해 있다.

강원 강릉시 난설헌로 145. 033 648 2760.


. 카페브라질 2호점 _ 영진항 카페브라질의 2호점. 강릉집에서 걸어 십여 분 거리에 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좋은 커피집은 늘 반갑다.

강원 강릉시 강릉대로 467. 033 662 1259.


. 하나로마트 강릉원예농협초당지점 _ 인근 주민들로 늘 붐비고 일하는 분들도 눈빛을 반짝이며 활기차게 일한다. 원예농협의 지점이어서인지 입구 부근 매대에서 꽃과 화분을 판다. 꽃다발 몇 천 원 어치면 한 주 동안 행복해진다. 인근 산지에서 갓 올라온 먹거리들이 신선하다. 강릉과 정동진 이름이 붙은 계란들은 서울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사과, 오이고추, 파프리카, 감자 등 과일과 야채 들도 대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주문진을 거쳐 왔을 생선들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즐겁다. 빽빽이 포개진 채 팩에 담긴 양미리 열 마리, 도루묵 다섯 마리가 불과 몇 천 원 가격표를 달고 있다. 저렇게 생생한 생명들을 이토록 헐케 먹는 우리가 그 값을 할 만치 제대로 살고 있나 묻게 된다. 집 바로 곁에 이런 좋은 마트가 있는 건 큰 복이다. 든든하다.

강원 강릉시 산양큰길 29. 033 647 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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