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에 살 때는 서울의 동남쪽을 중심으로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어림했다. 직접 차를 몰고 움직이니 실제 거리보다 시간 거리가 더 중요했다. 고속도로와 간선도로 등 큰 도로에 바로 올라탈 수 있으니 같은 시간에도 제법 멀리까지 나설 수 있었다.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면 집 가까이 하남의 동사지(東寺址)를 찾았다. 천년이나 그 자리를 지켰다는 고려 불탑 두 기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저들은 저 자리에서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성립과 왜란과 호란과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과 대한민국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 아래 내가 서있다. 오늘은 천년의 하루이다.
마포로 살림을 옮겼다. 옛 동네에 가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대신 강화도와 파주, 고양으로 자주 나선다. 거리와 시간을 셈하는 출발 지점이 달라졌다. 고즈넉한 동사지 대신 파주 장릉과 고양 서오릉과 김포 장릉과 파주 아웃렛과 출판도시와 헤이리와 가까워졌다. 일하다가 갑갑해지면 노을을 보러 강화도나 영종도로 나선다. 바다가 가까우니 고마우면서도 길이 끊겨 더 뻗을 수 없는 게 아쉽기도 하다.
강릉집을 마련한 후 서울 말고도 강릉이라는 중심이 하나 더 생겼다. 위로는 주문진, 양양, 속초, 고성, 아래로는 정동진, 동해, 삼척이 있다. 아직 그 아래로는 제대로 내려가 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꼭 울진까지 내려가 금강송 숲을 보고 덕구온천에 몸을 담그리라 다짐한다. 강릉의 일기예보와 뉴스에 늘 눈이 간다. 내 구글 메일에도 뉴스 ‘강릉’ 키워드 필터를 걸어 두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강릉, 밤에도 30도 열대야’ 뉴스를 들으며 안타까워한다. 이렇게 동쪽바닷가에 마음 두다 보면 내가 서울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보고 있었구나 되짚게 된다.
고향사랑기부제가 곧 시행된다고 한다. 특정 지역에 기부하면 일정 금액까지 세금을 공제해주고 그 지역에서는 기부자에게 지역 특산 선물을 보내주는 제도이다. 나는 강릉에 내기로 마음먹었다. 머문 날을 다 합쳐야 일 년에 불과 몇 주 정도이겠지만, 나는 강릉 주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