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가는 길

by 박상하

강릉 가는 길이 하나뿐이라면 서운했으리라. 나와 맞지 않는 전공 때문에 방황하던 학부 시절, 눈이 내리면 주섬주섬 배낭을 꾸려 서울역으로 향했다. 밤 11시 58분 서울발 남원행 통일호 열차를 타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면 남원역이다. 사위가 새까맣게 막막한 대합실에서 취사도구에 텐트까지 가득 찬 배낭에 기대어 졸다 보면 새벽 첫 버스가 나를 태우러 온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으로 덮힌 지리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 소식이 들려오면 그때처럼 당장 산으로 떠나야만 할 것 같다. 그럴 때면 한계령으로 향한다. 노랫말처럼 바람 소리가 들린다. 겨울이면 내 조그만 차에 겨울 타이어를 꽂아 둔다. 다른 차들은 피하는 길이니 호젓하게 오르는 산은 온전히 내 것이다. 한계령 오르는 길 상투바윗골에는 그때 내 젊음이 묻혀 있을 것만 같다. 그때 얼어붙은 폭포를 내려오며 내가 떨군 지팡이 하나는 아직도 그곳 어딘가에 남아 있을까. 폭설로 길이 폐쇄되지 않는다면 한계령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산채비빔밥으로 요기할 수 있다. 험한 날씨에도 휴게소를 지키는 상인들이 고맙다.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휴게소는 고갯마루에 걸터앉았다. 저 아래 남설악으로 쉴 새 없이 구름이 흘러간다. 천천히 밥을 씹으며 흩날리는 눈을 바라본다. 해외에 사는 누군가는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한계령이 떠오른다 했다. 창에 반사되는 내 얼굴은 나이가 들었다. 눈이 발 아래서 뽀득거린다. 더 바라보고픈 마음과 이제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밀고 당긴다. 아름답다.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마음을 조금쯤 이해할 것도 같고 아름다움의 한 극을 엿본 듯도 하다. 신선이 산을 집 삼는 이유일까.


그렇지만 마냥 눌러 앉을 수는 없다. 한계령을 넘어 설악을 빠져나온다. 근처 양양의 메밀국숫집에 들러 요기해도 즐겁다.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한달음에 내닫는 길보다는 7번 국도에 오르고 내리며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 더 사랑스럽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호해변과 동산항과 인구항과 남애항을 따라 주문진과 사천진항을 따라 내려온다. 인구항에 들러 해변을 마주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다. 흰 띠를 두르고 밀려오는 파도 사이로 솟구치고 잠기는 서퍼들이 보인다. 하염없이 파도를 기다린다. 서핑이란 저리도 평화로운 활동이었던가. 몇 해 전 이곳에서 안면 있는 H 교수님을 만났다. 갓 정년을 맞으셨다 했다. 평창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집을 구해 골프 치고 서핑하고 등산하며 소일하신다 했다. 만년의 삶이 행복해 보였다.


남애항의 사랑스러운 초등학교를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힐끔거린다. 저만치 물러선 바다가 보이고 솔숲에 둘러싸인 아담한 학교. 차를 멈추고 교정을 천천히 거닐고 싶을 만치 아름답다. 이곳 아이들은 쪽빛 하늘처럼 푸른 꿈을 꿀까. 서울에서는 고급 아파트 정원에나 선심 쓰듯 겨우 몇 그루씩 심긴 소나무들이 바닷가를 따라 무리지어 넉넉히 생기를 나누어준다. 마치 공기와 물, 자연처럼, 가장 소중한 것들은 돈으로 셈할 수 없다는 듯이.


느지막한 오후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떠난다면 영동고속도로를 택한다. 점점 가라앉는 해를 등지고 달린다. 기울어 가는 오후 햇살이 산야를 따뜻하게 물들인다. 아직 해가 남아 있다면 훌쩍 터널을 통해 강릉에 들어서는 대신 대관령 IC로 빠져나와 대관령 옛길로 접어든다. 1959년에 제작한 ‘대관령의 겨울’이라는 옛 영상을 유튜브에서 만났다. 한국전쟁 휴전 후 제작 환경이 열악했을 텐데도 썩 잘 찍은 영상이었다. 실력 있는 촬영 감독이 혹한의 눈밭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만든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겠지만 덕분에 6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를 근사한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옛길을 굽이 따르다 신사임당 사친시비 곁에 잠깐 차를 세운다. 조금 더 아래 있는 전망대에 멈춰도 좋다. 대관령의 절반 지점쯤 왼편 큰 바위에 ‘남무아미타불(南舞阿彌陀佛)’ 문구가 한글과 한문으로 함께 새겨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강릉 시내와 동해 바다 풍광은 막막하게 아름답다. 옅은 저녁안개 낀 해질녘이라면 아련한 꿈결 같은 불빛들이 대기 너머 아롱거린다. 령(嶺)을 넘으면 다른 세계로 들어설 것만 같다. 이제 영서(嶺西)에서 영동(嶺東)으로 넘어왔다. 강릉이다.


도로에서 갇혀 차 안에서 버리는 시간은 아깝다. 가급적 정체를 피해 움직인다. 강릉집에서 서울집으로 돌아올 때는 대개 저녁을 먹은 후 오후 7시에서 8시쯤이다. 서울에 도착하면 밤 10시에서 11시 무렵. 이때는 양양고속도로가 제격이다. 터널 구간이 길어 차 앞뒤 간격 유지와 과속에만 주의하면 비나 눈 같은 일기의 영향도 덜 받는다. 이런 산 중에 터널을 뚫어 길을 내다니, 기막힌 현대 토목기술에 감탄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기 힘들었을 길이다.


가로등이 드문 칠흑 같은 산중을 달리다가 갑작스레 서울로 들어선다. 빽빽한 고층 건물과 아파트 불빛이 눈부시게 휘황하다. 강릉과 서울은 동시대이지만 다른 세계이다. 몇 시간 사이에 두 세계를 오가느라 현기증이 난다. 메트로폴리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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