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멀어지고 변화하는 것들에 대하여
나를 떠올려 보자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습은 무표정한 내 얼굴이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무던하게 반응하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시니컬하게 대하고.
웃음을 아끼고, 진중함을 유지하는,
큰 물살이 덮쳐도 표정변화 없이 잔잔한,
'차가운 사람'
어릴 적부터 나에 대해 굳게 믿어왔던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스스로가 차가운 사람이라는 믿음.
그도 그럴 것이, 감정적인 동요가 크지 않았고,
쉽게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그러게,
언제부터 이렇게 웃음도, 눈물도 아끼게 되었을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라는 데이터의 통계학자다.
나는 살면서 경험했던 여러 데이터를 토대로, '나는 차가운 사람이다'는 결론을 지었다.
'차가운 사람'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모인 데이터들의 예시는 이러했다.
- 주위 모든 사람들이 울었지만, '7번 방의 선물' 영화를 보면서도 울지 않았다.
- 시험에서 불합격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 타인의 힘든 얘기를 들었을 때, 감정적인 공감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를 조언했다.
- 오해로 인해 타인이 나를 떠나가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냈다.
=> 결론: 나는 차가운 사람이다.
결론을 이루는 하나하나의 장면들이 나의 시야에 맺혔다. 나는 그런 무표정했던 찰나의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동안 타인의 고통 앞에서도, 나의 고통 앞에서도 참 잘도 이성적으로 행동해 왔다. 나는 이러한 면들을 '차가움'이라는 폴더 안에 분류해 넣었다. 그렇게 29년의 기간 동안 수북이 쌓인 나의 '차가움' 폴더는 금방이라도 넘칠 것처럼,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차가움이라는 단어가 결국엔 나의 전부를 집어삼킬 것처럼.
그렇게 가설과 부합한 데이터들로 인해, 결론이 점차 견고해질 무렵
누군가 나의 분류법에 의문을 제기했다.
"넌 다정하지."
그 한 마디에 29년 동안 쌓아 올린 통계가 주춤했다. 나는 당황하며 내가 쌓아온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다시 검토했다. 나의 무던함 속에, 사실은 다정한 온도를 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내가?"
"응, 넌 다정한 사람이잖아."
"... 다정하기보단, 차가운 쪽이 아닌가?"
"네가 차가워?"
그 순수한 의문에 되려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건 내 삶을 송두리째 뒤집는 가설이야. 내가 모은 데이터에는 그 어떤 다정함도 없었어.
결론: 나는 차가운 사람이다.
단 하나의 의문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결론을 잠시 지운 나는 망설였다.
정말 내가 다정한 사람이 맞다고?
그렇다면 왜 나는 스스로에게 늘 차가운 사람으로 남았던 걸까.
지금까지 분류되어 온 이 '차가움'은 왜 '다정함'이 될 수 없었을까?
아무리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으려고 해도, 결국엔 주관적인 시야에 맺힌 상일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데이터의 통계학자가 아닌 소설의 편집자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삶 속에서 드러난 모호한 정보를, 받아들이기 편한 방식으로 가공해 온 소설의 편집자.
나는 '차가움'이라는 주제에 맞지 않는 컷들을 가차 없이 잘라내 버렸다.
7번 방의 선물을 보며 우는 옆 자리 사람을 살피느라 정작 집중하지 못했던 나의 슬픔도, 시험에 불합격했을 때 심하게 자책하느라 더는 감정적일 수 없었던 순간도, 더는 들여다보지 않고 '차가움'의 폴더에 집어넣었다. 어쩌면 내 안의 따스한 면모를 찾아내는 것보단, 그저 '차가운 사람'이라는 범주 하에 놓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 고통과 슬픔이 찾아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내가 각색한 '차가움'이라는 소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부여한 '다정함'의 존재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다정함'의 분류가 새로 생기자, 이전까지 무조건 '차가움' 분류 안에 욱여넣어졌던 나의 삶의 여러 면모들이 다시금 제 자리를 찾았다. 다정함은 새로 써야 할 문장이 아니라, 내 안의 원고지에 빼곡히 적혀 있던 문장이었다. 단지 내가 다정함이 엿보이는 모습엔 밑줄을 긋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나는 다시 내 삶의 원고지를 읽는다.
'차가움'이라는 서술어에 가려 보이지 않던 다정한 문장들을 찾아내어, 이제야 선명한 밑줄을 긋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써 얼려 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내 안의 가장 오래된 오해와 작별하고자 한다.
다정함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다.
내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