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틴다는 마음으로는 탈이 난다

1장. 세상이 우릴 속일지라도

by 상희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에 몸을 내맡긴다.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었더라? 어서 집에 가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없던 머릿속에, 뭉게뭉게 그동안 미뤄뒀던 불안감이 올라온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 맞을까?


29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나이.

정규직에 취직해 착실히 연차를 쌓아가는 친구들과, 다양한 분야에서 입지를 쌓아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부유하는 섬 같았다. 그들이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저주처럼 되뇌었다.


'29살이야. 이제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어.'


걸어온 걸음이 너무 많아, 뒤를 돌면 늦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면 버텨야 한다.

그리고 또 하루를 버틴 퇴근길, 지하철 속 부유하듯 일제히 핸드폰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직장인들을 바라보았다. 그 좁고 밀폐된 칸 안에서 우리는 닮아 보였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흔들리며, 눈앞의 작은 화면 속에 자신을 내맡긴 정장 입은 우리들. 나는 내 것이 아닌 속도에 맞춰 흔들리며, 이 열차에서 내리면 곧장 인생의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처럼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다.


여기에서 포기하면 도태될 것처럼.

내가 이미 한계에 다다를 만큼 지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른 살이 된 이후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굴레에 던져질 것 같다는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욱여넣어져 버티고자 했다.

이게 결국엔 현실적인 거라고. 모두들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보단, 어느 정도 버텨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버틴다는 마음으로는 탈이 난다. 결국 탈이 나기 마련이다.




맞지 않는 옷에 몸을 욱여넣으면 살갗이 쓸리듯, 내 마음도 안쪽부터 서서히 상처가 났다. 낮 동안 억누른 생각들은 밤마다 제방을 넘치는 강물처럼 범람했고, 나는 매일 밤 잠식되는 기분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도저히 내 손으로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모순되는 마음들 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들이 지나갔다.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이대로 질식할 것 같다는 고통 사이에서, 나는 결정을 미루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나는 왜 이다지도 삶을 떠밀리듯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또다시 반복된 퇴근길, 지하철의 무거운 덜컹거림에 몸을 맡기던 나는 문득 29살의 내 나이를 다시금 계산해 보았다.


29살, 한국 평균 기대 수명 80세에서 87세 사이, 그중 3분의 1 지점에 다다른 나이.

지금부터 버티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남은 3분의 2를 평생 버티며 살아가야 할 텐데, 나는 왜 이토록 조급했을까? 누가, 언제부터 나이를 먹을수록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가르쳐온 걸까.


'문제는 나이가 아니었어. 맞지 않는 속도가 나를 병들게 한 거야.'


29살이어서 늦은 게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속도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췄기 때문에, 그 마찰열로 인해 내 삶에 탈이 났던 거였다. 남들의 정거장에 맞추기 위해 내 마음의 브레이크를 무시하고 달려온 대가로 '나'라는 존재는 마모되고 있었다.


반복되는 퇴근길 지하철 속에서, 나는 더는 타인을 시선으로 쫓지 않았다. 대신 차창에 비친,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던 손가락의 힘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떨리는 손가락에서 힘을 서서히 뺀다. 마디가 하나씩, 손잡이에서 떨어진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이제 난, 손잡이를 놓을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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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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