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 놀부며느리 Feb 01. 2021

울고 싶은 나에게.

그냥 울어도 된다고 말해 주는 그런 날.

01 울고 싶은 나에게. 그냥 울어도 된다고 말해 주는 그런 날.

 울고 싶어도 잘 울지 못하는 나에게 이제는 조금 울어도 괜찮다고,,, 너도 참 애쓰며 살았다고 말해 주고 싶은 순간이 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순간이 자주 지나갔다.
 매 순간 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나의 행동에 대한 의도와 목적이 희미해져서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내가 그리 열심히 달렸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참 열심히 살았다.




  '결혼이 소꿉장난 인줄 아냐?‘

엄마,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언젠가, 누군가와 해야 할 결혼이라면 언제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이 갑자기, 정말 갑자기 결혼이란 걸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몇 번 이고 가슴을 쓰려내려도 그 쓰라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고집스러운 결혼이란 걸 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이지만 우리부부는 남들보다 풍족했다. 남편은 군대 전역 후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4학년 학생이었고, 나는 여전히 엄마품속이어야 할 것 같은 스물다섯. 하지만 스물 셋부터 시작된 사회생활이 누구보다 역동적이고 도전적이었기에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무섭지 않은 순간이었다. 수입이든, 사회적 위치든 모든 것이 적절히 완벽한 그 순간, 나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 나이 그 때 하는 결혼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다섯 철부지의 선택이었다.

  결혼 후 9개월 정도 지날 무렵, 나는 계획임신을 했다.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늘 계획과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학 4년 내내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무조건 준비했다. 몸도 마음도 준비가 끝났을 때 정말 첫째가 찾아왔다. 아이를 품고 있는 열 달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힘들었던 적 없다. 임신한 기간 동안 해외 연수 등으로 외국을 3번이나 다녀왔고, 임신하지 않은 사람들과 같은 수준, 아니 그 이상의 강도로 일하는데 미쳐있었다. 심지어 아이를 낳는 그 날까지 나는 지방 강의가 있었다. 임신한지 37주 밖에 안 되었고, 아직 예정일이 3주나 더 남았지만 너무 많이 움직여서 일까? 정말 두 번 힘주고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그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너무 부족한 엄마였다. 그저 아이를 낳기만 하면 엄마가 되는 것 인 줄 알았다. 출산한지 3주 만에 다시 일을 하러 집밖으로 나갔다. 내 아이지만 우리 부모님 아이인 듯 그렇게 첫째 아이를 맡기고 나는 예전처럼 일했다.
 부모님도 그런 나를 정말 많이 응원했고, 그렇게 일하고 돈 버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하셨다. 그땐 나에게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은 그저 남편 용돈정도에 그쳤다. 그래서 나는 이번 달 남편 월급이 얼마인지 궁금하지 않았고 신경 쓰지 않았으며,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나 나는 전세 17평으로 시작했던 신혼집에서 벗어났다. 23평집을 매매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과정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린나이 결혼한 탓에 늘 내 옆에 부모님이 계셨고, 나는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대로 따르기만 했다. 짐이 다 옮겨지고, 완벽히 정리된 집에 몸만 들어가는 형식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내 돈 버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큰 실수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결혼은 일찍 했지만,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모든 판단을 부모님께 맡겨야 했다. 독립했지만 독립하지 못한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았지만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못했다. 뭐 하나 할 때마다 부모님께 물어보며 행동했던 우리의 최대 실수는 '돈 모으는 것'에 대해 부모님의 조언을 철저히 무시했다는 것이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아이 둘 낳은 부모가 되었고, 23평 집에서 33평집으로 대출을 낀 이사를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성공했다는 착각 일 뿐 진짜 성공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돈은 벌 때 모아야 되고, 벌 때 아껴야 된다고 했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버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돈 귀한 줄 모르고 20대를 보냈다.   
 친구들이 실컷 놀 때, 나는 미친 듯이 일했다. 미친 듯이 일을 하다가 아이 둘을 출산하고 돌아보니 나를 위해 쓴 시간은 없다고 느껴졌다. 갑자기 밀려온 육아 우울증, 출산 우울증 때문에 나는 나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될 만큼 미치는 순간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변해버린 몸은 돌아올 길이 없었고, 지친 마음은 누가 달래주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 무렵,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이 싫어졌고 나는 10년 동안 잘 달려오던 세일즈의 길을 하루아침에 접어버렸다.

 그때는 그저 사람이 싫었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 내가 가진 것을 설명, 설득하여 나의 편으로 만드는 그 과정에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싫었다. 만나는 고객도 싫었지만, 함께하는 이들도 싫었다. 관계에 부족했고 그 누구와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어쩌면 모든 것에 부족한 나를 마주하고 대면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의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하고 몰입했던 그 일에서 로그아웃 하는 시간은 단 3일도 걸리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것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어린나이에 영업의 세상에서 이루어 낸 것들, 남들이 갖고 싶어 했던 커리어, 금수저가 아니어도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여유로움... 단 3일 만에 그 일을 정리하던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지쳤는지 그때는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고생했던 순간들을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니까.. 내 스스로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 대로 울고 싶은데, 마음속으로만 눈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챙겨야 할 것들이 있고 나의 감정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었기에 잠깐은 숨겨둬야 했던 것 같다. 분명 나도 울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 텐데 괜찮은 척 툭툭 털고 일어났다. 어린시절 시험을 망치고 집에 돌아와 엉엉 울어 내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던 엄마가 잠시 뒤 방문을 열어보면 다시금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던... 어린시절 나의 모습처럼... 어른이 돼서도 나는 그렇게 툭툭털고 일어나면 되는 줄 알았나보다.
 
 사람은 누구나 힘든 순간을 마주한다. 힘들지 않다고 해도 힘든 순간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그래서 덜 힘들다고 믿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때도 스스로를 감싸 안아줘야 한다.

‘너는 괜찮지 않아’
‘울고 싶으면 그냥 울어’
그렇게 가장 먼저 소리 내서 울 기회를 줘야 한다.
울고 싶은 나에게 그냥 울어도 된다고 말해 주는 그런 날, 지친 나를 인정해주는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