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도 열심히 하고, 너무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아무일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때
나는 아빠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허무했다.
우리아빠
평생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살면서 여행한번 제대로 가 본 적 없고
설, 추석 명절에도 본인이 생각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식들이 집에 와 있거나 말거나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일하셨다.
그런데, 아빠가 이제 일도 못나가고 집에 있다니...
아빠는 얼마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까.
얼마나 아쉬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나는 아빠에게 아무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가끔, 자주, 지금보다 더 많이 아빠를 보고
벗이 되어 이야기 나누며, 웃을일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아프고 난 어느날은 어린애처럼 전화가 와서
오늘정말 대박이었다고, 떼돈 벌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또 어느날은 혈당 수치가 정상이 되고, 혈압이 정상범주에 들어 너무 즐거워하는 아빠의 모습.
떼돈은 단 돈 3만원이었고,
정상수치는 나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라 한다는게 우습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다.
(그저, 이런 상황자체가 너무 화났던걸까)
부모에게 효도 할때쯤 되면
부모가 나이가 들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어디 놀러가고 싶어도 피곤해서 함께 할 수 없다더니
내가 딱 그런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 아빠의 그런 자랑조차 짜증이 났다.
하지만 나도 철이든걸까.
아빠의 말을 들어주다보니 너무나 순수한 우리아빠가
귀엽기도 했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아빠는 의사의 말대로
3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어떻게든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자신의 건강상태와는 별개로 할머니를 챙겨야 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지만
장남으로서
할머니의 아들로 마땅히, 당연히 해야할 일로 여겨졌다.
그렇게 환자가 환자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우리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