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삶을 추구합니다.
“열정, 도전. 희망, 참 좋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잖아요.
그런데, 이미 기운 빠져버린 사람한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지금 덮어쓰고
있는 이불을 걷어차는 것도 버거운데요.”
간혹 자기계발 강의 제안이 온다. 독서법과 글쓰기에 대한 책을 썼기 때문일까. 대부분 기업 강연이 많은데 다들 잘 알 듯 회사가 마련한 강연에 열심히 임하는 직원은 드물다. 자신의 돈을 내고 외부 강연을 들을 때는 귀가 쫑긋하지만. 어쨌든 나도 기업 강연은 그리 달가워하진 않는다. 청중인 임직원들의 열의가 느껴지기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면 난 그들에게 열정, 도전, 노력 등에 대해 깊게 이야기 하진 않는다. 그들의 눈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미안할 때가 있다.
업무에 지칠 대로 지친 동공 풀린 눈, 그 눈으로 그저 쉬고 싶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들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할까. 그래도 보수를 받고 하는 강연이기에 내 이야기를 통해 하나라도 건져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열심히는 살되 마음이 비뚤어지거나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보더라도 채근만 하지는 말 것을 주문하고 끝을 맺는다.
예능을 즐겨 보진 않는다. 내 삶이 한창 고달플 때, 예능을 통해 웃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TV 속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괴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비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그런 거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연예인 생활에 깊이 관여해 악플을 달거나 하진 않는다. 사실 로그인해서 악플 다는 것도 귀찮다. 관조의 자세랄까. 그들의 삶이 있다면 내 삶도 있다는 식이랄까. 맞다. 마음이 이렇게 비뚤어질 때가 있다. 눈만 내려도 세상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가도 운전 길에 밟히는 하얀 눈이 원수 같을 때도 있다. 이분법적으로 딱 떨어지게 살 수가 없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이 항상 정도만 걸을 수 있을까. 항상 노력해야 하고 열정에 가득 차 있어야 하고 불굴의 의지를 갖기를 세상 곳곳에서 주문한다. 주문한 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낙오자 비슷한 사람이 되고 열정 없는 사람이 돼 잊힌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갑자기 음주운전을 하고, SNS에서 남을 비방하며 남을 못살게 굴고 세상의 법칙을 어기고 살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상황이 나빠져도 무조건 긍정을 외치고 안 아픈 척 살아가야 하는 자신에게 미안하다면, 그 부담을 덜 수는 있을 텐데 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마음이 비뚤어졌다고 언제까지 비뚤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이 나아지면 마음의 기울기는 다시 되돌아올 것이니까. 얌체공 아는가? 통통 어디로 튈지 모르는..때로는 얌체공처럼 사는 것도 필요하다.
<무너짐의 미학> 연재는 마음 내킬 때 계속됩니다.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살지도 말고, 포기도 않고 어중간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