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채우는 삶

어중간하게 사는 것도 괜찮아.

by 작가 글리쌤


“내 시간인데 마음 편하게 써본 적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네. 물론 먹고살기 바쁜데 여유 부릴 시간이 어디겠어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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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언가 잃어버린 경험을 하면 그 무언가에 집착하곤 한다. 일, 건강, 대인관계, 사랑, 시간 등을 한 번 잃어보면 다음번에는 다시 놓치지 않으려고 하듯 말이다. 물론 자포자기하고 또 잃기도 하지만.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다. 잘못 쓰고 버려진, 잃어버린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군대를 다녀와서 철이 들었고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지진 않았다. 우선 토익학원부터 등록하고 불안감을 지우려고 했다. 뚜렷한 꿈을 좇기보다 그저 뭐라도 하며 시간을 채우면 불안감이 가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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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뚜렷한 목표가 없는 인생궤도에 올라탄 시기였다. 누군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귀에 속삭이기라도 하듯 홀린 듯이 시간을 꽉꽉 채워 바쁜 사람이 되고자 했다. 바빠 보이는 사람이었을 뿐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시간을 채워 무엇이라도 하면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토익점수를 어디에 써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수강을 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채운 시간 자체에 뿌듯함을 느끼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외면했다. 낮에는 열심히 고군분투했으니 저녁엔 놀러 나가 ‘거짓된 바쁨’을 위로하는 모순에 빠졌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였고 나 또 한 나한테 속기 시작했다. 정작 결과치는 적다 보니 결국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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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꽉꽉 채워 스케줄표에 욱여넣고 그 시간에 충실해야 함을 최대 미덕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으니. 문제는 꽉꽉 채운 스케줄에 따라 바쁘게 살다가도 하루 이틀 딴짓을 하거나 열정이 모자란다 싶으면, 곧바로 시간을 낭비했다는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커져간다.


쉽게 치유되지 않는 반복적인 병에 노출돼 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기도 한데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아 놓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삶을 사는 느낌.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열심히 살다가도 가끔은 무너지더라도, 더 이상 나를 탓하지 않고 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을 거라고.



<무너짐의 미학> 연재는 마음 내킬 대 올라오거나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맹목적인 열심 혹은 자포자기 중간 즈음에 서서 어중간한 삶을 살기를 지향하는 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