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습니다." 만사가 귀찮을 때

어중간한 삶을 지향합니다.

by 작가 글리쌤


“열심히 살다가도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수없이 찾아오는데 비정상인 건가요?”


직장에서 10년을 버티면서 병이란 병은 다 얻은 것 같다. 스트레스로 옆머리가 새치로 뒤덮였고 속 쓰림은 만성이 됐었다. 하루하루가 고역스러웠지만 아이러니하게 우수사원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하나 정작 들여다보면 위태로운 직장인이었을 뿐이다. 주위 기대감은 높아가고 무기력은 심해지는데 내려놓지도 계속 끌고 갈 수도 없는 상황에 놓였었다.

지나가는 직장상사들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요동치고 내 인생이 여기에서 소진될 것 같은 기분에 멀리 보이는 현관문을 응시하곤 했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퇴사를 하며 가장 먼저 생각이 든 것은 자유를 누린다는 것보다 20년, 30년 한 직장에서 버티며 가족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신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난 목적이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도중하차한 인생이었다. 그들 눈에는 낙오자였을 수 있다.

사진 출처 : 아주경제신문 8.18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사회구조에서 밀려난 채로 살아갔다. 한낮이 되어야 일어났고 늦게 일어난 죄책감에 시달리며 도서관에 가 책 읽기에 몰두했다. 현실 도피의 시작이었다. 나이는 차는데 현실감각은 무뎌지고 종종 들려오는 친구들의 결혼 소식은 또다시 자괴감에 빠져들게 했다. 20대에는 뭘 해야 하고 30대에는 뭘 해야 하는지 정해주는 사회 관념 속에 빠져 허우적댔고 제때 갖추지 못한 직업의 고하, 결혼 여부, 재산 수치 등의 굴레에 잠식되고 있었다.

몇 년 방황의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놓고 지내는데 오히려 기회들이 찾아왔다. 책을 몇 권 집필하다 보니 강의 의뢰도 많이 오고 협업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아등바등 놓지 않으려고 살 때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는데 마음을 놓고 지내니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돼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내공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본다. 그게 언제 응축돼 터질지 모를 뿐.

요즘도 그저 만사가 귀찮을 땐 강의 요청도 뿌리치고 맥주 한 캔 들고 버스여행을 떠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는 하지만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언제 또 은둔생활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언젠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 나한테 미리 자발적 휴식을 주는 것이다. 만사가 귀찮을 때는 항상 마음속으로 외친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무너짐의 미학>은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열심히 살기도 어려운

중간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위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