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삶을 지향합니다.
“싫어도 끝까지 버티는 삶을 어떻게 생각해요?”
“별 수 없으면 버티는 거죠. 좋아서 버티는 사람은 없죠.”
버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또 다른 대안이 없어 현재 쥐고 있는 동아줄을 놓기 쉽지 않아 버티기에 들어가니까. 대부분 아버지 세대들이 그렇게 참아왔고 한 직장에서 오래 일을 해왔다. 요즘은 오래 일하기도 힘든, 정년퇴직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으니 버티는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긴 하겠다.
예전에 퇴사를 결심했던 이유는 도저히 버티기 힘든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불 꺼진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하며 식대는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사비로 편의점 밥을 사 먹는 나날이 지속될수록 지쳐갔다. 30일 이상 지속되니 삼각김밥의 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일을 할수록 명함에 써진 이름 외에 나 자신을 찾기 힘들었다. 물론 이는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이제는 취직하기도 힘든 시대니까. 아이러니한 것은 취업을 해도 그때부터가 골인이 아니라 본선이 사작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버텨내서 지금도 출근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달랐다고는 할 수 있겠다. 곧바로 그만둘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여기서 떨어져 나가면 내가 발붙일 곳을 곧바로 찾을지도 미지수였기 때문에. 그래서 직장에 다니면서 딴짓도 많이 했다. 생존을 위한 딴짓은 돌파구를 찾는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일가를 이룰 것 같지 않았기에 끊임없이 강연을 찾아가 듣고 또 자격증에 눈 돌렸다. 엄청난 방향성을 가지고 노력에 몰두하는 삶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멋대로, 나답게 살겠다는 배짱도 없었다. 어느덧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 어중간한 삶을 지향하게 됐다. 죽도록 노력하지는 않되 가끔 무너져도 좋고 완전 포기는 하지 말자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포기는 하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최고 정점을 향해 온 힘을 쏟지도 않는다.
내가 글쓰기 강사라고 해서 항상 철자도 틀리지 않고 어법을 다 아는 것 마냥 누군가에게 내보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날림으로 수강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도 않다. 계속 공부하면서 부족한 것은 채워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고 숨기려고만 들 때 나중에 발각이 되면 더 힘든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근엄함이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본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
도저히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을 때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하지만 용기는 현실에 부딪혔을 때 조금씩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면서 내 발 붙일 곳을 미리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입에 풀칠할 거리는 찾은 채 독립할 수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재앙인 것은 맞다.
버티는 것이 미덕일 수 있다. 그럼에도 파티션 너머 직장상사의 미래가 내 미래로 보이지 않으면 버티는 것이 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버티는 것을 그만두는 것은 독주에 대비할 처방제를 한 포라도 준비했을 때일 것이다.
<무너짐의 미학> 연재는 포기하지도, 최선의 노력을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글입니다.
어중간한 삶도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