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삶을 지향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겠나? 자넨 그만두면 안돼.”
“왜 그만두면 안 되나요?”
“자네 일을 내가 떠맡게 되잖나.”
쓸모 있는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회적으로 유능한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한정할 수도. 강남 어딘가에 아파트 한 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로 한정할 수도. 아니면 그저 입에 풀칠하는 밥벌이만 하고 있는 사람들로 범위를 확장해도 될까. 아니면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 상관없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영역일까.
처음에는 전자로만 한정했고 이제는 후자로 억지로라도 설정해놓고 살아간다. 내가 이루지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고, 내가 못다 한 꿈을 이룬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저 조직 속의 작은 태엽처럼, 부품처럼 살아가는 내가 처량하게 보인 시절이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의 결과가 어디에 쓰이는지 모른 채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이 세상에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 건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사는 느낌’ 뿐이랄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몰랐다.
과학자, 대통령, 연예인... 어렸을 적에는 대부분 비슷한 꿈을 꾼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직업들이 세상에서 쓸모 있고 유능한 직업이라 인식하고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회사에 다니고, 원치 않던 직무에 지원하고 그렇게 사회구조에 편입하게 된다. 나도 꿈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반 사무직 직장인이 되어 한 칸짜리 파티션 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퇴사했다. 퇴사하는 순간 쓸모없는 인간이 됐다는 생각에 투명인간처럼 숨어 살기도 했다.
쓸모 있는지 없는지 누가 판단 내려주기도 바쁜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저 쓸모 있는 사람인가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다. 가치평가를 해주는 사람들이 마치 조물주나 된 것처럼 그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간다.
무기력을 겪든, 우울증을 겪든 자신 본연의 가치는, 쓸모 여부는 누군가 공장 도매가격을 매기듯 함부로 지어줄 수 없는 영역이다. 반대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식용돼지 엉덩이에 빨간 도장을 찍듯, 인생 평가를 내려 줄 권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쓸모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스스로 도장을 찍을 이유이다.
<무너짐의 미학> 연재는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열심히 살기도 힘든, 어중간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