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중간한 삶을 살겠습니다.
“인생이 언젠가부터 꼬인 기분이 듭니다. 실타래가 꼬인 느낌...”
“꼬인 실타래는 과거와 같죠. 풀어도 또 꼬일 수 있어요. 잘라버릴 필요도 있어요.”
“연봉 얼마야”
“결혼은 했고?”
“집은 몇 평인데?”
“과장급이면 중형차 이상은 끌어야지?”
이런 질문을 해오는 대다수는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놓지 않으면서 질문만 하곤 한다.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움츠러들게 된다. 타인에 의해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끄집어내게 되고 ‘지금 이 나이 먹도록 뭘 한 거지?”라며 한탄하게 된다. 관심받고 싶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가 난다. 먹고살기도 바쁜 요즘인데 언제부터 남의 인생에 관심이 이렇게 많아진 걸까.
요즘 비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을 테니 지금까지 축의금으로 낸 금액을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의의가 어쨌든 관습적으로 수백 년 간 이어져온 것을 단번에 부정하기란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래된 관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자가 되고 무언가 모자란, 이상한 사람이 되곤 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사람은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반대로 혼자서도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많아져, 무리 지어 일하는 사람들이 무능해 보이는 시대가 오면 또 어떻게 세상이 바뀌게 될까 궁금하다.
“아직도 (무능력하게) 머리 맞대고 일을 하고 있네요?”
어찌 됐든 지금의 자신은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됐다. 원해서 된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데도 지금의 모습이 된 사람도 대다수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데는 복잡다단한 모든 변수들이 스쳐 지나가 이루어진 것이다.
친구, 학교, 부모, 직업, 연봉, 대출... 모든 결정, 선택, 환경 등 스스로 정할 수 없었던 것들 또한 존재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지금 모습은 스스로 100% 만들어 온 것이라 착각을 하며 산다. 잘됐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 창조자는 단연코 자신이라 우긴다.
이런 사람이 된 것을 한탄하면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 자기부정에 오래도록 빠져 있는 것과 열심히 살다가도 가끔씩 무너져 맥주 한 캔 들이킨 후 욕을 내뱉으며 복귀하는 것과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됐을지라도 자신은 오직 자신일 뿐이다.
<무너짐의 미학>은 열심히 살다가도 포기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어중간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위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