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나오는 장기하의 노래에 피식 웃으며 그야말로 요즘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한다. 늦둥이로 긴급 리필된 육아휴직 덕분에 아침마다 동동거리며 출근하는 수고로움도 없고 학년초 상담이며 학부모총회며 몰려드는 업무 스트레스도 휴직자에게는 그저 남의 얘기이다. 일상이 고만고만하게 매일 평화롭다. 그런데 그다음가사에는 그렇지 못하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아니다. 요즘 고민이 있다. 다름 아닌 글쓰기에 대한 고민. 다이어리에 조금, 노트에 조금, 핸드폰 메모장에 조금, 작가의 서랍에 몇 편. 여기저기 글똥이 쌓이는데 쓰고 있는 나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른 채로 횡설수설만 하다 결국 맺지 못하고 흩어져있는 내 글똥들이 고민거리이다. 음악프로그램을 보면 이 좁은 땅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끝도 없이 나오네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게 글쓰기에도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일 줄이야. 많다.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나 빼고 나보다 다 잘 쓴다.
이런 표현을 어떻게 생각해 냈지? 그때의 분위기를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전달했지? 저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쓸 생각을 하다니 참신한데? 에디터 픽, 구독자 급등, 오늘의 작가, 브런치북 연재, 다음 메인 장식, 조회수 폭발. 같이 글을 쓰기 시작한 글동기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신기한 일들이다. 나만 빼고.
나는 왜 안되는 걸까? 당연하다. 난 지금 거의 절필이다. 일단 뭐라도 써야 글똥이라도 거름이 되고 비료가 되어 싹이 틀 텐데, 도통 쓰지를 못하고 있다.
돌도 안된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쓰는 것이 다 쓴 치약 끄트머리 쥐어짜듯 찔끔찔끔 나오는 체력과 시간을 비틀어내어 기어코 쓰고야 마는 것임을 알지만, 요즘 그냥 새 치약을 꺼내 편하게 쭉쭉 짜면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책이나 읽으며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다. 남의 써놓은 이야기를 읽으며 소비만 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지.
글감들이 스쳐 지나가고 찰나의 순간, 문장으로 구성되었다가 점멸하듯 반짝. 사라진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쓰지 않는 날들이 쌓여 다시 쓰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듯하는 마음이 들면, 짜증이 나고, 조바심이 난다. 결국은 "거봐, 아기 키우며 뭘 하려고 그래. 어차피 안 되는 일이야......" 포기까지.
이것이 불행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글쓰기를 관둬야 할까. 금쪽같이 소중한 마지막 육아휴직을 행복하게 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글쓰기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가 쓰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내 글을 기다리지 않는다. 슬쩍 그만두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의 그림자가 점점 진해진다.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라는 책의 정아은 작가 북토크를 신청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해보는 북토크
나는 보통 어느 연수를 듣던지 간에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다. 질문하는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내향인이다. 그런 내가 목까지 차오르는 질문을 참을 수가 없어 손을 들고 질문을 토해버렸다.
저는 글쓰기가 불행해졌습니다. 작가님은 그런 경우가 있으신가요?
북토크에 와서 전업 작가에게 글쓰기가 불행하지 않냐고 묻는 뜬금없는 질문에 다행히도 작가님은 정말 솔직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전업작가가 되고 책을 내면 아마추어 작가들보다 비교와 경쟁이 훨씬 더 심해진다. 서점 온라인 포털의 실시간 판매량이 매일 매시간별로 집계가 되고, 나는 수시로 접속해 내 책의 판매량에 괴로워한다. 출간 작가들 사이에서 강연이나 사인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도 비교가 된다. 책을 출간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도 여러 가지 인간의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해 마음이 괴롭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제 막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몇 편 쓰기 시작하는 꼬꼬마 아마추어 작가인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베스트셀러 작가도 하는구나. 이건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겪는 감정이구나.'
득근을 하기 위해 운동을 한 후 근육통이 오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식단조절을 할 때 역시 당연히 배가 고프다. 달리기를 하면 당연히 숨이 찬다. 그리고 글을 쓰면 당연히 괴롭다.
이런 깨달음이 들고나니 내 글쓰기의 시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 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나. 아기와 둘이 집에 있는 날이 길어지면 애엄마는 누구에게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상의 스몰톡들이 소중하다. 그런데 아무 곳에도 말할 곳이 없고 대답할 이가 없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쪽이라도 책을 읽고, 어쩌다 한 번이라도 횡설수설 글을 썼다.
대파를 썰다가 나온 눈물 콧물에 젠장, 파가 매운 건지 마음이 매운 건지, 헝클어진 달래머리를 보고 어찌나 미쳐가는 내 정신머리 같은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서 급하게 핸드폰 메모장에 메모를 남겼었다. 둘째 아이 육아용품을 사다가 인간 당근이 돼버린 짠내 나는 육아휴직자의 가정경제 파탄에 대해서는 아직 할 말도 많이 남았다. 글을 쓰면서 불행하기만 했었나. 그저 내 말을 내 맘대로 한다는 기쁨이 있지 않았었나.
계속 쓰고 싶어 졌다. 이제는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다. 안 괜찮다. 이왕이면 내가 쓴 글이 최대한 널리 널리 알려져서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