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갑자기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에서 아무 생각이 들면 그걸 키보드로 치는 작업이 꽤 재미있었던 건 대학시절 무렵이었던 것 같다.
영화 시사회 알바를 하면서 영화 후기를 써서 관리자에게 보내줬어야 했는데 영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지만 보고 느낀 감상을 글로 만드는 작업 자체가 신기했다.
특히 키보드를 칠 때 나는 그 톡톡 소리에 모니터에 뭔가 나타나는 것이 신기해서 네이버 블로그를 2003년인가 부터 열심히 썼었다. 영화 리뷰, 책을 읽고 쓴 독후감, 미국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쓴 영어 토플 에세이, 그리고 여기에도 계속 쓰는 영어 공부에 관한 얘기도 네이버 블로그에 적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내용을 그냥 썼었지만 사람들이 방문해주고 댓글을 달아주고,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미를 알아가면서 글쓰기는 나만의 글쓰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글쓰기를 시작한 것 같다.
어떤 글들은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읽어줘야 하는-알아주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정보 전달을 하는 기사라던지, 정부의 보도자료라던지.
하지만 프로작가가 아닌 개인 블로거가 글의 촛점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면 글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네이버에 블로거 소개란에 올라가고 싶어서 뜨거운 이슈에 대해 글을 써봤었다.
그렇게 몰라주던 네이버에 삐질 무렵 브런치가 탄생했다.
글쓰기 플랫폼. 딱봐도 미디엄을 벤치마킹한 플랫폼이었지만 네이버의 그 촌스런 블로그 배경화면에서 깔끔한 흰색 배경으로 글을 쓰고 볼 수 있게 해준 브런치는 신선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1,000개 정도 직접 쓴 글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쓴 글이지만 모든 글의 퀄리티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2003년에 쓴 글들은 - 작가승인은 빨리 났었고, 초기에 영어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브런치에서 검색어를 영어로 하면 초반에는 내 글들이 상위에 검색이 되었다. 사실 의도적이었다.
네이버 블로그는 신변잡기로 글을 쓰다보니 책 리뷰, 영화 리뷰, 정체를 알 수 없는 초기의 글들, 미국 대학원 이야기, 기업 이야기 등 여러 주제로 글을 쓰다보니 내 블로그의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것 같아서
브런치에서는 일단 우선순위는 영어로 하자 정하고 영어 관련 글을 많이 올렸다. 사실 내 브런치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도 영어 관련 내용이나 글로벌 외신 뉴스 번역본을 읽기 위해서 구독하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족으로, 통계치를 보니 내 글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즉 조회수가 높은 글은
'토플시험에서 100점이란' 이라는 글이고,
가장 공유가 많이 된 글은,
'전략이란 무엇인가' 라는 글이다.
주로 영어, 외신 뉴스, 그리고 회사에서 일했던 내 경험을 녹인 기업이야기가 결국 내 브런치의 주된 콘텐츠인데 가끔은 이런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처럼 그냥 키보드로 뭔가 뚱땅뚱땅 치고 싶은 날에는
글쓰기가 재미없을 때가 찾아왔을 때 이렇게 아무렇게나 글을 써보고 싶다.
브런치 메인에 노출이나, 다음에 내 글이 걸리는 거 신경쓰지 않고, 이제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최소한의 예의가 된 것 같은 배경 이미지 삽입을 안 한 글을 올려보고 싶기도 하고.
(글이 글이면 됐지. 왠 이미지냐. 라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이미지를 안 넣고 글만 썼다가, 아 재미도 없는 글에는 이미지라도 넣어야 하는 걸 깨닫고 브런치에는 꼬박꼬박 배경이미지라도 올리려고 한다)
내가 정한 컨셉과 안 맞는 글 올려도 되는 걸까 생각했다가. 내가 뭐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작가 등단에 매번 물먹는데 내가 올리고 싶은 글 이렇게 가끔은 올려야 스트레스가 풀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글쓰기는 내가 재미있자고, 내가 힐링 받기 위해서 화면에 한 문장 한 문장 풀어내는 작업 아닌가. 신청해도 되지도 않는 작가 입문 생각하며 폼잡기 보다는 이렇게 한 편 글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나'에게 시선을 돌린 글 하나 써본다.
p.s) 토플 시험에서 100점에 관한 글이 제일 인기가 많아서 좀 더 적어보면, 최근 영어를 가르치면서 느끼는 건 직장인 분들은 토플 100점 받기 참 만만치 않다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잘 한다 라는 얘기를 들은 사람이 아니고 외국어에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회사 다니면서 토플 100점을 넘겨 MBA 준비하고자 하는 분들은 GMAT보다 토플에 더 발목 잡힐 수 있으니 long-term으로 미리미리 준비하시는게 더 좋을 것 같다.
맞춤법 검사해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은 역사적인 첫 글을 기념하고 끝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자 고양이 사진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