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부터 서울의 어딘가에서 살아야 했었던 나는 서울의 동쪽, 북쪽, 서쪽에서 차례대로 살았었다. 신입생때는 뭣도 모르고 사촌누나 집 근처에서 살았었고, 다음은 학교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었고 마지막에는 KTX를 타기 위해서 서울역 근처인 공덕역에 터를 잡았었다.
서울은 나를 좀처럼 허락하지는 않았다. 가족이 없어서인지 결혼하기 전까지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나'사이에 누군가가 있지는 않았다. 친구도 있고, 회사 동료도 있었지만 주말에 상수역이나 홍대역 근처를 혼자 어슬렁 거리면서 서울을 관찰자로 바라보고는 했다. 사람들은 바쁘구나. 사람들은 연애하구나. 사람들은 즐겁구나.
물론 나도 친구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냈지만 당시에는 잠깐 머무르는 도시일뿐 내가 마음을 주지 못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에 가기 전 아시는 분이 해준 말이 있었다. 미국에서 뼈를 묻겠다는 마음으로 잡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힘들 것이다라고 조언해줬는데 당연히 못 찾았다. 능력인지 마음에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잡을 찾고 싶기는 했지만 늘 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프로젝트를 하던, 주말에 나와 같이 일을 하던 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 있는게 맞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상당한 tuition fee를 내고 정당하게 앉아있는데도..
Am I here in Vancouver too?
20대부터 이어온 혼자만의 생활이 3년전 깨졌다. 결혼을 한 것이다. 결혼을 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지만 가장 큰 의미는 '혼자가 아니다'가 아닐까 한다.
30대의 밴쿠버는 모든 걸 SJ와 함께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데려다 주고, 점심을 같이 먹고, 같이 장을 보고, 같이 집에 와서 저녁을 해먹고 뒷정리까지. 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지만 최근 며칠 동안의 같이 있는 시간의 밀도는 어마어마하다. 파워포인트에서 줄간격을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인 것 처럼
그래서 그런지 20대의 밴쿠버와는 달리 지금의 밴쿠버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 타인인걸 자각하고 있지만 이 도시 안에서 외롭지 않다라는 걸.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지 않고 SJ와 같이 얘기를 할 수 있다. 어떻게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아마 미네소타를 SJ와 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는 좀 더 어린 나이지만 둘이 잘 해나가지 않았을까 한다. 나도 미국이라는 곳에 발을 붙이고 있으려고 더 노력하지는 않았을런지.
24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태어난 고향에 머물렀던 시간들을 아무리 합해봐도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타인'인 채로 서울에 있었던게 더 편했었었다. 겨우 익숙해진 나를 다시 미네소타로 끌고 갔을때 또 힘들었었다
지금은 다른 것 같다. SJ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데려다 주는게 회사에 출근하던 시간대랑 똑같다고 궁시렁 거리지만 같이 길을 나서는 것도 즐겁고 걸어가는 공간도 좋다.
'타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은 결국 누군가가 나의 세계에 들어와줌으로 인해 '나와 + 너 = 우리' 라는 형태로 바뀌면서 만나는 모든 공간에 좀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