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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Hyuk Choi Jun 15. 2021

집 앞에 사파리가 있다.

나의 도림천 관찰기

2015년 신도림으로 이사를 왔다. 오래지 않아 집 근처에 구름다리가 생겼다. 지하철 역까지 거리가 줄었고 덕분에 집 값도 올랐다.(현실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이런 구름다리에 또 하나의 매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도림천의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남아공에서 15개월을 보내며 사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터라 구름다리에서 도림천에 서식하는 생물들을 관찰한다는 건 내겐 큰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네 살이 된 딸아이와 다리를 건널 때면 자연스럽게 도림천의 생물들을 직접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어 또 하나의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에 사는 생물들을 선명하게 촬영하기 위해 육중한 DSLR을 가지고 다녔었는데, 이제는 휴대폰의 줌 기능이 좋아져 손쉽게 녀석들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갤럭시 S21 울트라야 고맙다~)

자! 그럼 지난 한 달간 목격된 도림천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보기로 하자~


1. 잉어

2015년 이사 왔을 때 잉어는 목격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가끔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도림천 여기저기서 출몰하고 있다. 그 크기도 다양해서 팔뚝만한 성채에서부터 두 뼘 정도 크기의 새끼까지 도림천을 유영하고 있다. 주말에는 딸아이와 함께 도림천에 나가 먹이를 주기도 하는데, 야생 잉어라 그런지 먹이를 잘 먹지 않는다.

2. 가물치

3주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에 폭우가 쏟아져 도림천이 범람했다 그리고 바로 비가 그치자 넘쳤던 물이 순식간에 천을 따라 빠져 나갔다. 그러자 평소 볼 수 없었던 이색 어종인 가물치가 천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빠진 물살에 휩쓸려 가지 못한 것이다.  가뿐 숨을 내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속에 넣어주고 싶었지만 약속 장소로 향하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만 했다. 누군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녀석들의 생명을 구해줬기를 기도해 본다.

걱정되는 것은 이 사진을 보여준 여러 명의 지인들이 누군가 보양을 위해 집으로 가져갔을 거라는 예상을 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가물치는 노인 및 갓 출산한 산모의 보양식으로 유명하다.

3. 왜가리

남아공 파견 생활 동안 여러 번 대자연으로 트레킹을 떠났었다.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왜가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나의 길동무가 되어 주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의 출퇴근 길에 왜가리가 다시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리 바로 아래에 사냥 포인트를 정해 놓고 종종 미꾸라지를 잡아먹는다. 지난 주말에는 딸아이와 키즈 카페를 갈 때 그리고  올 때 두 번에 걸쳐 사냥 쇼(?)를 선보였다. 길동무와 그의 딸을 위해 미리 준비한 것처럼...

도림천 구름다리 아래(도림천 방향)를 관찰해 보시라 그럼 내 친구 왜가리의 사냥 쇼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4. 자라

지난 일요일 딸아이와 뽑기 샵으로 가던 길이었다.(참고로 난 피규어 덕후이고 딸아이는 나의 피를 이어받아 벌써부터 뽑기의 매력에 빠져있다. 주말에 일어나면 무조건 뽑기 샵을 간다. 우리 부녀의 성지 순례길이랄까...) 왜가리가 사냥을 하고 있으려나 무심하게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뭔가 거대한 것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것은 바로 '거대 자라'였다. 45년을 살며 보았던 자라 중에 최고로 큰 자였다. 그 모습은 흡사 일본의 괴물 중 하나인 갓파가 나타난 것 같았다.

이미지 출처, 구글 나무위키

도림천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새(오리, 두루미, 청둥오리 등)와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사진으로 찍지 못했는데 메기와 비슷한 어종도 목격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이 그리고 주말 뽑기 샵으로 향하는 길이 기다려진다. 도림천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행복 뭐 있나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재미를 느끼다 보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닐까?


딸아이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또 다른 생명체가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며 글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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