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의노트> 북 리뷰
누군가에게 처음 다가갈 때면 가벼운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한 번 더 만날 때면 단단한 사람이고 싶다. 부담 없이 담백하지만, 알고 보면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사람. 이 책이 그랬다.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벼운 무게, 하지만 페이지마다 꾹꾹 담겨 있는 깊은 질문들. 그래서 주변에 사진을 찍기 시작한 사람이 있으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선물해주고 싶다. 이 책이 그런 것처럼, 나도 그렇게 보이고 싶다.
좋은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보았을 고민이다. 어서 빨리 잘 찍는 법을 배우고 거리로 나가 원하는 것들을 빨리 찍고 싶다. 저자 필립 퍼키스는 8가지 사진 연습 방법을 차례 차례 알려준다. 그러나 정작 실제 찍는 연습은 별로 없다. 그것도 한참 뒤에 가서야 나온다. 그럼 그는 무엇을 먼저 하라고 했을까?
1. 바라보기 : 전시장에 간다. 눈길을 끄는 사진 앞에 선다. 그것을 5분 동안 바라 본다.
2. 압핀 : 앞핀 2개를 6인치 거리를 두고 벽에 나란히 꼽는다...1분간 눈의 긴장을 풀고 벽을 바라본다.
3. 보는 방법 : 한 영역을 한꺼번에 전부 볼 수 있도록 눈의 근육을 풀고 뒤로 물러나 앉는다. 여기저기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우리는 본다. 이 책의 연습에 보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사실 어쩌면 당연하다. 보는 것이 먼저고, 사진은 나중이다. 유튜브에 필립 퍼키스를 검색하면 그에 대한 짧은 다큐 Clip 영상이 있다. 그는 마시던 커피 잔을 쥐더니 이렇게 얘기한다. '만약 이것의 이름이 없다면 어떨까요?' 그리고는 컵을 소중히 어루만지면서, 와! 하면서 놀란다. 사진을 찍기 전에 고민해야 하는 건 이런 것인 지도 모른다. 그가 앞에 놓인 컵을 소중히 바라본 것처럼, 우리 앞에 놓인 세계를 잘 바라보는 것. 깊이, 천천히, 일상의 사물들을 으레 보던 방식과는 다르게. 좋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좋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그게 전부다. - 19~20p
그러나 주변의 환경은 우리가 가만히 바라보게끔 두지 않는다. 어딜 가든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자극적인 이미지에 노출되어 있다. 눈에 들어 오지 않는 컨텐츠는 스크롤을 휙 내리듯이, 더 자극적인 이미지가 아니면 쉽게 눈길 주지 않는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의 발달로 인해 사진 찍기가 말 그대로 너무 쉬워졌다. 사물을 자세히 보기 전에 카메라를 먼저 들이댄다. '찰칵', 한 컷을 찍기보다는 '찰카카카카칵', 여러 컷을 찍는다. '우선 찍고 보자'는, 그리고 '많이 찍고 보자'는 태도. 과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 때보다 지금 사진이 더 좋냐고 물으면 쉽게 답하기가 어렵다.이는 단순히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하는 감성의 문제가 아닌 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태도, 셔터를 누르던 그 손가락의 무게, 그런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책이 던지는 질문은 사실 다양하지만, 관통하는 본질은 결국 하나인 것 같다. 결국 사진을 구성하는 건 3가지다. 나, 세계, 그리고 손에 쥔 카메라. 세계를 나의 시각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그것이 사진의 본질이다. 찍는 건, 사실 그저 따라오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말한 건지도.
당신이 카메라가 될 때 카메라도 당신이 될 수 있다.
** <사진강의노트> 에 대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라내방송> 라읽남 코너에서 보다 상세히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