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책 읽는 사피엔스
by 박상현 Jun 02. 2018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꼭 필요한 건 아냐

<좋은 사진> 북 리뷰

 사진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크게 병을 앓는다. 바로 ‘장비병’이다. 나 또한 그랬다. 렌즈를 여러 개 사 모았고, DSLR 바디를 업그레이드했다. 현질을 계속해서 캐릭터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게임처럼, 장비를 더 갖추면 더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그게 착각이었음을 몇 년이 지나서야 꺠달았다. 현실 세계는 게임 속 가상 세계와 달리 그리 단순한 곳이 아니었다.  

 

출처 : Pixabay


 카메라 가방의 무게는 자꾸 늘어만 갔다. 그때 산 커다란 카메라 가방은 충동구매의 운명이 대개 그렇듯이 몇 번 쓰지도 못한 채 장롱행이었다. 어깨는 더욱 짓눌렸지만, 사진에 담긴 무게감은 여전히 가벼웠다. 결과물이 그대로니 재미는 없어졌고, 가방이 무거워지니 들고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1달에 1번도 안 찍는 날이 많아졌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결국 갖고 있던 카메라와 렌즈를 다 팔았다. 사진을 완전히 접었었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취업 후 첫 명절 상여금을 받고 다시 카메라를 샀다. 그러나 기존과는 아주 다른 카메라였다. 다시 시작 하는 거니까, 부담 없이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다. 렌즈 교환도 안 되고, 크기도 작은 콤팩트 카메라지만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점이 맘에 들었다. 사람들이 참 많이 물어봤다. “그걸로 예전만큼 찍을 수 있겠어?” 나도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예전 카메라 가격과는 자릿수부터 달랐으니까. 그러나 기대란 건 언제나 빗나가기 마련이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게 해 준다는 오해


'사진가의 능력을 채워주지 못하는 카메라는 지구 상에 단 한 대도 없다' – 1985년 코닥 연감

 

 모든 병에 원인이 있는 것처럼 장비병도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게 해준다’는 생각. 커뮤니티에서 각종 카메라 사용 후기들을 보면, 선예도, 화질 등 이미지 품질을 측정한 테스트들이 가득하다. 무수히 나열된 테스트 결과들을 보며, 우린 비싸고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게 해줄 거라고 믿게 된다. 그 믿음은, 쉽게 가진 믿음들이 그렇듯이, 셔터를 누르고 나면 쉽게 깨어진다.


 분명 비싸고 좋은 카메라는 높은 품질의 이미지를 보장한다. 정량적으로 측정된 성능들에 반박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화질이 좋고 쨍한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아웃포커스가 잘 된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 브레송, 케르테츠와 같은 대가의 사진들은 오래전 촬영했고, 현대 사진에 비하면 이미지 품질도 그리 훌륭하지 않다. 하지만 우린 그 사진들 앞에서 여전히 멈칫한다. 그 사진이 뿜어내는 감정, 서사, 느낌 같은 것들에 사로잡힌다. 좋은 카메라가 좋은 사진을 찍게 해준다는 생각, 아니 오해는 사실은 좋은 사진에 대한 오해인지도 모른다. 기술적으로 잘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는 오해.  


Mondrian Pipe and Glasses - Andre Kertesz



명기가 명작을 낳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좋은 사진>의 저자 진동선에 따르면, 사진에 대한 이 뿌리 깊은 오해는 사실 사진의 역사 자체에서 비롯된 바도 없지 않다. 사진은 사진이라는 예술 양식의 역사인 동시에, 카메라라는 기계의 발달사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진보는 사진 예술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케 했다. 기술적 제약들이 없어지면서, 사진가들이 표현할 수 있는 것 또한 더 많아지고 넓어졌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유독 라이카에서 수많은 명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라이카만의 빠른 촬영과 연사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기가 명작을 낳는다는 말이 과히 틀린 것만은 아니다.


 다만 현대의 카메라 대부분은 과거 명기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기능들을 다 갖추고 있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성능을 지녔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작업하는 사진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결과물도 매우 놀랍다. 애플, 삼성이 주최하는 사진 공모전의 수상작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체 미학자 지아니 로글리아티는, ‘명기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겐 안타까운, 더 이상 장비 탓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붉은색 라이카 로고는 모든 사진가들의 로망이다. (출처 : Pixabay)



우리에게 부족한 건 좋은 카메라가 아니다


 무언가 잘하고 싶다면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이 부족해 보이니까,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장비를 산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조급함에 카메라 가방을 채워 넣는 짓은 더 이상 그만하자. 저자는 먼저 '영혼의 눈과 마음'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마음의 전달 체계에 의해 찍히’는 것이 때문이다. <사진 강의노트>에서 필립 퍼키스가 ‘좋은 시각’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생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좋은 사진을 위한 정답도 결국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찾아야 하는 것이다. 스님의 좋은 말씀들처럼 허무맹랑한 결론인 지도 모르겠지만.


“좋은 사진은 결국 좋은 카메라와 좋은 눈, 좋은 마음의 결과이다. 어느 하나라도 갖추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완벽한 작품이 되기는 어렵다.”  - <좋은 사진>, 진동선


 그때 카메라를 바꿨던 건 업그레이드도 옆그레이드도 아닌, 명백한 다운그레이드였다. 이전에 없던 제약들이 생겼다. 화질 저하로 감도를 많이 올릴 수 없게 되었고, 빠른 연사도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더 노력하게 됐다. 느린 셔터 스피드에서도 떨리지 않기 위해 숨을 골랐고, 한 컷 한 컷을 더 소중하게 찍었다. 이미지 품질은 분명 예전만 못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잘 찍으려고 하기보다, 그냥 ‘내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나만 찍을 수 있는 사진, 내 시각과 내 감정이 들어간 그런 사진. 그래서 그때 찍은 사진보다 지금 찍은 사진이 더 맘에 든다. 주머니에 카메라 하나 넣고, 오늘도 외출이다.


<Street at Sunset>


keyword
magazine 책 읽는 사피엔스
찍고, 보고, 읽고, 그리고 기록하다.  
Photographer, Reader and Office Worker.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