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북 리뷰
새해가 될 때면 다이어리의 '올해 할 일'에 항상 적어 놓는 것이 있다. 5년째 맘만 먹고 있는 글쓰기다. 글을 써 봐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이유는 사실 별 건 아니었다. 평소에 하릴없이 떠오르는 잡념들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으니 답답했다. 오랜만에 방 정리를 하듯이, 생각 사이에 낀 먼지들을 털고 가지런히 정돈해 놓아두고 싶었다. 한 달에 한 개 정도의 글만 써볼까, 그런 가벼운 맘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너무 만만하게 봤던 걸까. 생각과 달리 글쓰기는 내겐 너무 어렵고 고약한 상대였다. 이번엔 꼭 해내리라, 전의를 불태우며 책상 앞에 앉지만 번번이 실패. 앞부분만 깨작대다 패잔병처럼 남은 문장들은 매번 광명을 보지 못한 채 '작가의 서랍' 행이었다. 왠지 모르게 변비 환자의 울분이 이해가 되었다. 앉는 데는 달랐지만, 힘만 죽어라 쓰고 나오는 건 없었으니까.
요즘엔 1년 동안 새롭게 포스팅되는 블로그 글이 300억 개라고 한다. 책은 200만 권이 새롭게 쓰여진다. 지금 이 문장을 쓰는 1분 사이에도 5만 개쯤 되는 글들이 새로 올라왔을 거다. 사진이나 영상만 올리는 포스팅도 있겠지만, 반을 제외해도 1년에 150억 개다. 글쓰기가 이렇게나 쉬운 세상이다. 그런데도 왜, 내 글쓰기는 이렇게 힘든 걸까.
어떤 글들은 첫 문장만으로도 기억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나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니 설국이었다' ),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오늘 엄마가 죽었다')와 같은 글들이 그렇다. 좋은 첫 문장은 독자와 필자 모두에게 경외의 대상이다. 어떤 글을 쓰던 매혹적인 첫 문장을 써야겠다는 욕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첫 문장에 무척 공을 들인다. 문제는 그런다고 완벽한 첫 문장이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첫 문장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고작 '하루에 한 문장만 겨우' 쓰게 된다. 그러다 지쳐 결국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 일쑤다. 나처럼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블로거라면 더할 수밖에 없다.
최선을 다할 수 없으므로, 모든 글쓰기의 첫 문장은 대충 쓰는 게 좋다. 어차피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쓸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면 아무 문장이나 쓰면 된다. 그래도 좀 나은 문장이 있지 않겠냐고?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김중혁, <무엇이든 쓰게 된다>
김중혁은 첫 문장을 그냥 대충 쓰자고 권한다. 전업 작가인 그도 첫 문장과 오랜 기간 씨름했지만, 효과는 글쎄?라는 거다. 첫 문장은 일종의 블랙홀이다. 첫 문장에 심취해 빠져 들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쓰지 못한 '무(無)'의 상태에 이를지도 모른다.
우리가 써야 하는 건 문장이 아니라 글이다. 고작 문장 몇 개 쓰자고 꿀 같은 여가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허비하진 말자. 당신도 아직 첫 문장을 쓰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면, 과감히 콤마를 찍어버리자. 노트북을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 전에. (여기까지 쓰는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나도 던질 뻔했다.)
좋은 글들을 읽을 때면, 내심 '그런 생각은 나도 예전에 했었던 건데'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사실 웬만한 공상이나 생각들은 누구나 과거에 떠올려 봤던 것들인 경우가 많다. (SF영화의 시나리오는 어렸을 적 누구나 상상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머릿속에선 휘발되어 버리는 반면(나처럼...), 누군가는 이를 붙잡아 글로 써낸다. 차이는 어디서 비롯될까.
글쓰기는 집을 짓는 행위와도 닮아 있다. 머릿속 잡다한 공상들을 재료 삼아(1단계 : 문장), 지반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2단계 : 문단), 하나의 집을 완성한다(3단계 : 글). 누구나 글쓰기 재료는 많다. 그럼에도 글 하나 쓰기가 어려운 건, 우리가 문단을 잘 쓰는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집을 잘 지으려면, 지반을 잘 다지고 기둥을 튼튼히 세워야 한다. 글도 그렇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의 기초 구조인 문단을 잘 써야 한다. 문단 쓰기를 통해 생각들을 구조화하고, 이를 잘 배열해 하나의 글로 완성해낼 수 있다. 스티븐 킹은 문단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글이 생명을 갖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문단 쓰기야 말로 글쓰기의 진짜 시작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문단은 세계관의 반영이기도 하다.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가가 문단의 길이와 리듬에서 드러난다. 문단은 영화의 테이크와도 비슷하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문장이라도 문단의 흐름과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지워야 한다. 단어와 단어의 흐름보다는, 문장과 문장의 조응보다는, 문단과 문단의 리듬이 더욱 중요하다. - 95p
김중혁은 문단을 영화의 테이크에 비유한다. 테이크는 일종의 의미 단위다. 관객은 테이크를 통해 영화를 이해한다. 화려하고 멋진 장면이 많은 영화도, 편집이 잘못되면 난해하고 재미없는 영화가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유려한 문장이 많아도 문단을 잘못 쓰면 글 전체가 망가진다. 문장보다 중요한 건 문단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에세이가 재밌는 작가다. 그가 에세이에서 다루는 주제는 대체로 단순하다. 평소 즐겨 듣는 재즈나 대중음악, 매일 10km씩 뛰는 달리기, 그 외 시시콜콜한 일상들. 그럼에도 그가 길어 올린 일상의 순간들은 늦은 오후 방에 비추는 햇살 조각처럼 따뜻하고 포근하다. 최근 유행 중인 '소확행'이란 말도 그의 에세이에서 나왔다.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 무라카미 하루키,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
작가라면 인류적 사명을 띤 거대한 주제들만 다룰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하루키처럼, 그들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부터 써 나간다. 그게 글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것부터' 쓰는 것이 '글쓰기의 가장 쉬운 시작'이다.
좋은 글들은 주의 깊은 관찰에서 탄생하고, 주의 깊은 관찰은 대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에 대해 쓸수록 잘 쓸 확률이 높다. 글쓰기도 일종의 '덕질' 수단이 될 수 있다. 뭘 써야 할까 고민이라면, 내 주변의 작고 가까운 것들부터 써보는 건 어떨까.
수영을 처음 배울 때면 누구나 몸이 물에 뜨게 하는 연습을 가장 먼저 한다. 물에 잘 뜨려면 힘을 주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초보자들은 오히려 발을 세게 차고 팔을 강하게 젓는다. 안타깝게도 그럴수록 몸은 더 잘 가라앉고, 쉽게 지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내 글쓰기도 힘을 빡 주고 하는 수영 같았던 게 아닐까 싶다. 첫 문장을 잘 쓰려고 한참을 씨름했고, 세상 진지한 철학자가 된 것 마냥 거창한 주제를 잡았다. 글 쓰는 게 즐겁기보다 고되었다.
사실 수영도 힘을 뺄 줄만 알고 나면, 물속이 세상 편하고 재밌는 곳이 된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앞으로는 어깨에 힘 좀 빼고 대충 쓰려한다. 좀 서툴게 쓰더라도 어쨌든 즐겁게 썼으면 된 것이다. 그렇게라도 쓰다 보면 언젠가는 '무엇이든 쓰게' 될 테니까.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하는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때로는 상상하는 나를 지나치게 믿고만 것 같아서, 후회가 든다. 돌이킬 수 없다. 손을 놓아야 한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을 썼고, 그럼에도 쓸 수 없는 것을 쓰지 못했다. 이번에도 쓰지 못했던 것을 다음에 다시 쓰려고 할 것이다. - 6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