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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현 Apr 15. 2018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읽어 봐야 할 책

<센서티브> 북 리뷰

 "저 죄송한데,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아요." 작년 여름 어느 술자리에서 먼저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다. 평소 술도 꽤 마시는 편이고, 노는 자리도 잘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했다. 자리에 더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느낌. 그냥 빨리 침대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언제 말을 해야 할까, 어느 타이밍에 얘기해야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 1시간, 2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순간이란 건 오지 않았다. 결국 왁자지껄한 대화 한가운데를 싹둑 끊고서야 입을 뗐다. 자리를 급히 나와 택시를 타자 이내 후회감이 밀려왔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앞으로 불러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 택시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끔뻑 잠이 들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파티가 끝나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를 지루하고, 비사교적이고, 무례한 사람으로 여길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 25p, <센서티브>

예민하다는 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일 뿐

 

 <센서티브>의 저자 일자 샌드는 덴마크의 공인 심리 치료사로, 예민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상담하고 도와 왔다. 이 책 또한 그들을 치유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목적에서 쓰였다. 하지만 책이 의도한 독자층과는 달리, 난 스스로를 예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책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점차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통념과는 달리 예민함이란 게 특정 사람들에게만 내재된 기질적 성향이 아니라,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Cloudy day>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예민 하다의 사전적 의미다. 예민하다는 건 사실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동질성의 압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선 다르다는 것 자체를 드러내기 어렵다. 조금만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왜 이렇게 예민해?"라는 핀잔을 듣거나, '프로 불편러'로 희화화되기 일쑤다. 일례로 구글에 '예민한'을 치면, 관련 검색어로 '예민한 성격 치료'가 나온다. 개인이 고쳐야 할 부정적 특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그렇게 다름을 용인하기보다 같음을 강요한다. '예민함'이란 낙인을 개인에게 찍음으로써.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문화가 우리의 성향이나 행동과 매우 다른 성향과 행동 방식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극도로 민감한 사람들 중에는 평생 남들이 기대하는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있다. - 9p, <센서티브>



정말로 필요한 건, 개인의 용기가 아니다 


 그때 그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두가 술자리를 즐기고 있는 와중에 먼저 일어난다는 건 내가 즐겁지 않다는 걸, 내가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일어나려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토익 시험이나, 면접 같은. 그런 중대사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은 일어나려는 사람을 붙잡고 본다. 그냥 피곤하다고,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말해본 적도 없다. 조금 솔직해지고, 조금 다른 것이 그렇게 어렵다. 


당신이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면, 이제 그런 노력을 멈춰야 한다. 지금까지 남들이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일면을 감추기 위해 전전긍긍했다면, 이제 그런 노력을 포기해야 한다. -78p 


 저자는 독자에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솔직해지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자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타인의 지지와 응원 없이도 그런 용기가 꺼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을까. 여전히 냉담한 타인들 앞에서 도리어 더 큰 상처만 받지 않을까. 정말로 필요한 건,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다름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변화이다. 개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다른 의견이 수용되는 사회적 토양이 만들어진다면, 누구든 자기 자신으로 뿌리내린 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는 예민함이 더 이상 치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가꿔 나가야 할 것이 되기를 바란다.    



<센서티브> - 일자 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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