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 배경과 향후 금융 시장 변화 전망
카카오페이가 지난 10월 1일 중소형 증권사 중 한 곳인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했다. 국내 핀테크 회사가 증권사를 직접 인수한 것은 처음이다. 이로써 카카오페이는 증권업 라이센스를 자동 취득하며 증권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대형 증권사들은 카카오페이의 인수 발표 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표정 관리에 들어간 모양새다. 바로투자증권의 자본금이 적어 신용 대출이 어렵고, MTS 구축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게 근거다. 하지만 이는 모두 시간이 좀 걸릴 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비슷한 신규 사업을 추진 중인 다른 간편 결제 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토스는 이미 금융사 제휴를 통해 펀드, 해외 주식과 같은 투자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삼성페이 또한 펀드온라인코리아와 함께 9월부터 펀드 판매를 시작했다. 카카오페이가 2,300만 고객을 대상으로 자체 상품을 팔기 시작하면 타사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카카오 플랫폼이 소매 금융 시장(기업이 아닌 가계 고객 대상의 금융)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미 카카오뱅크의 성공으로 입증된 바 있다. 카카오페이의 증권업 진출은 비단 증권 시장뿐 아니라 소매 금융 시장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페이의 증권사 인수 배경과 향후 시장 변화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2015년 3월, 금융위원회는 전자 금융 거래 시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 조항을 폐지했다. 이후 PAYCO, 카카오페이 같은 주요 간편 결제 서비스가 등장했고 지금은 온라인 쇼핑의 핵심 결제 수단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최근 간편 결제 사업자들은 온라인 영역을 넘어 오프라인 영역까지 서비스를 확장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올 18년 2분기 간편 결제 거래액은 약 10조로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을 기록 중이다.
이런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간편 결제 사업자들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온라인 결제 수수료 중 PG, 카드사 몫을 제외하면 간편 결제사가 먹는 파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간편 결제사가 취하는 결제 수수료를 대략 0.5% 미만으로 추정한다. 올 1분기 거래액 10조에 0.5%를 곱하면 500억, 1년 기준으로 2,000억이다. 거래량은 막대하지만 먹을 건 얼마 없는 시장이고, 이마저도 마케팅 혜택으로 고객에게 돌려주고 있다. '17년 네이버페이가 사용한 마케팅 비용만 700억 원에 달한다.
간편 결제로 오히려 득을 본 건 카드사다. 온라인 결제 시장 추이를 볼 수 있는 PG사의 결제 수단 별 이용액 현황을 보면, 2014년까지 카드 사용 비중은 67-68% 대에 머무른다. 하지만 간편 결제가 도입된 2015년 이후 카드 사용 비중은 지속 증가해 작년에는 78%에 육박했다. 간편 결제가 정작 카드사 배만 불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그래서다.
지난 3년 간 간편 결제는 금융 시장에 전례 없는 혁신을 이뤘다. 허나 누적된 적자 때문에 내실 없는 성장에 불과하다는 시선을 피하기도 어렵다. '17년 페이코의 영업 손실은 357억, 카카오페이의 영업 손실은 255억에 달한다. 카드사-VAN-PG가 나눠 먹던 국내 결제 시장에 후발 주자로 진입한 간편 결제 사업자가 흑자를 내는 건 쉽지 않다. 간편 결제 사업자들이 다른 금융 시장에 눈독 들이는 이유다.
카카오페이의 증권사 인수는 간편 결제사의 신규 수익 모델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거래액으로 대표되는 외형적 성장만 좇던 시기는 지났다. 간편 결제사들의 운명은 누가 먼저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발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칼을 먼저 빼든 카카오페이는 어떻게 돈을 벌 계획인걸까.
은행에서 우대 금리 혜택을 가장 많이 주는 조건은 '급여 이체' 조건이다. 많게는 0.2~0.3%까지 더 이자를 얹어 주며 은행들이 급여 이체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뭘까. 수신액을 늘리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고객의 돈이 머물러 있어야 다른 금융 서비스를 연계해 파는 게 용이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급여 계좌를 트는 순간, 영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사의 예금, 대출 상품뿐 아니라 타사의 보험, 연금, 펀드 등 은행이 고객에게 팔지 못하는 금융 상품은 없다.
간편 결제 사업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금융 플랫폼'도 그간 은행 창구가 해왔던 역할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물리적인 공간인 은행 창구를 디지털 공간인 App으로 옮겨 온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간편 결제사의 마케팅 전략도 은행과 유사하다. 우선 고객의 돈을 모아 놓는 게 첫 번째 과제다. 그래서 나온 대표적인 서비스가 간편 송금이다. 최초로 간편 송금 서비스를 선보인 토스, 후발주자로 완전 무료 송금 서비스를 내 놓은 카카오페이 모두 대히트였다. '18년 2분기 간편 송금액 규모는 8.2조에 달한다.
문제는 여전히 고객의 돈이 잘 모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토스의 경우 연결된 은행 계좌에서 송금하면 5회 이후부터 수수료를 받지만, 계정에 먼저 금액을 채워 놓고 송금하면 무조건 무료이다. 잔고 유지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좀 영리한가. 지인들만 봐도 5회까지만 토스를 쓰고 이후엔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는 패턴이 대다수다. 이대로 가면 간편 송금도 '빚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묘안이 CMA 계좌다.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여 단기 자금이 머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카카오페이가 증권사 인수 후 첫 상품으로 CMA 계좌를 내놓을 것은 확실해 보인다. 편리한 UI/UX를 앞세워 계좌 개설이 용이하면서도, CMA 계좌의 고질적 단점인 불편한 입출금은 간편 송금으로 해결한다. 간편 송금을 잘 쓰던 고객이라면 여유 자금을 카카오페이에 맡겨 놓지 않을 이유가 없다.
CMA 계좌는 운용 수수료 수취, 기존 펌뱅킹 비용 감소 등 그 자체로 돈이 되는 상품이다. 하지만 카카오페이는 수익성이 좀 줄더라도 타사 대비 높은 이자 혜택을 제공해 계좌와 수신액을 늘리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은행의 급여 이체 조건처럼, CMA 계좌도 고객의 돈이 카카오페이 플랫폼 내에 머물도록 잡아 놓는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것이다.
그간의 간편 결제 사업은 밑 빠진 독 같은 신세였다. 고객도 많고 거래량도 막대했지만 그 많던 돈은 어딘가로 흘러가버렸다. 옆에서 콩고물을 주워 먹은 건 기존 금융사들이었다. 온라인 결제액이 늘자 카드사는 더 많은 가맹점 수수료를 수취했고, 간편 송금은 은행에 수백억 규모의 펌뱅킹 수익을 안겼다. 은행과 카드사가 돈을 번 건 그들이 핀테크를 잘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돈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 사업의 본질도 사실 재테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재테크를 시작하려면 종잣돈부터 모아야 하듯, 금융 사업의 시작도 고객의 돈을 모아 놓는 게 우선이다. 돈을 모이면 이를 굴려서 돈을 버는 게 재테크고, 금융 사업도 고객의 돈이 모이면 이를 굴려 수익을 창출한다. 카카오페이가 증권사 제휴라는 손쉬운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증권사를 굳이 인수한 것은 돈을 직접 모아야겠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이는 카카오페이에 대규모 투자한 알리페이의 '위어바오'와 같은 전략이다. 알리페이는 2013년 티엔홍자산운용과 협력해 MMF 펀드 '위어바오'를 내놓았고, 이듬해 10월에는 티엔홍자산운용의 지분 51%를 인수하며 지배 주주가 된다. 현재 위어바오의 자산은 187조 원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MMF펀드가 되었다. 알리페이는 위어바오의 성공을 계기로 자산 관리, 보험, 대출까지 사업을 확대하며 수익 모델을 다각화할 수 있었다.
국내 CMA 시장도 계좌 잔액 기준 46조 원('17년)으로 절대 작은 시장이 아니다. 카카오페이는 이미 2,300만 고객 수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간편 결제 플랫폼 중 하나다. 파격적인 CMA 금리 혜택으로 고객의 돈이 카카오페이 플랫폼에 본격적으로 쌓이면 그 파급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카카오페이의 귀추에 주목하는 이유다.
지난해 인터넷 은행이 최초로 출범한 후, 디지털 금융 플랫폼을 둘러싼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간편 결제 사업자들이 수익 모델 확보를 위해 자산 관리, 대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전선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너 나할 것 없이 분산된 앱들을 통합하고, 디지털 인력을 충원하는 건 향후 더욱 치열해질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국민들의 금융 생활을 바꾸어 놓은 간편 결제, 간편 송금이 등장한 게 고작 3, 4년 전이다. 앞으로 있을 디지털 금융 플랫폼 전쟁은 또 어떤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