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 북 리뷰
지난 4월, COLDPLAY 내한 공연에 갔다. 너무 신나서 주변에 그간 자랑을 좀 하고 다녔다. 사실 COLDPLAY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다. RADIOHEAD, OASIS 등 브리티쉬 락을 접할 때였다.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으로 CD를 향뮤직 사이트에서 샀다. 콜드플레이 2집이었다.
그러나 COLDPLAY의 음악이 3집 이후 전자음이 섞인 팝 성향으로 변하면서부터는 잘 듣지 않게 되었다.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최근 앨범은 잘 안 들었지만, 옛날 노래가 좋아서 콘서트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 이런 팬들을 알았을까. Coldplay는 이번 투어 Setlist에 없던 Don’t Panic(1집)과 God Put A smile Upon Your Face(2집)를 연주했다. 모두가 열광했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팬들조차도 Coldplay의 초기 앨범이 후기 앨범보다 왜 더 좋은지 설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나 또한 비슷하다. 콜드플레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한참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들의 음악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의 취향은 확고하다. 저스틴 비버는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뮤즈에는 열광한다. 왜일까. 멜로디가 좋아서? 보컬의 목소리가 멋있어서? 그렇다면 우리는 그 멜로디, 그 목소리를 왜 좋아하는 걸까? 이 책 <취향의 탄생>은 사실 단순해 보이지만, 누구도 잘 묻지 않던 질문에서 시작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는 걸까?”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자. 사실 과거부터 음악은 계급을 구분하는 강력한 지표였다. 부르디 외는 이렇게 얘기했다. “누군가의 계급을 확신시키고 정확하게 분류하는 것은 음악이다.” 이처럼 취향의 중요한 속성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특히 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나타낸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원은 컨트리 음악을 더 좋아하는 반면, 민주당원은 랩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불쾌하게 들릴 수 있다. 나의 취향이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계급 같은 외적 요소에 의해 영향받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적어도 중산층 이상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일은 여전히 합리적이다. 조금 속물적이긴 하지만.
물론 이러한 예측이 예전만큼 유효하진 않다. 스트리밍 서비스 덕분이다. 과거에는 음악을 들으려면 꽤나 자원이 필요했다. 음악 잡지를 챙겨보거나, 발품을 팔며 CD를 사러 다녔다. 지금은 어떤가. 뉴욕 필하모닉의 모차르트 교향곡이든 아르헨티나의 탱고든 몇 번의 클릭으로 들을 수 있다. 음악에 드는 시간적, 물질적 비용이 극단적으로 낮아졌다. 더 이상 클래식이 중산층 이상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취향의 속성,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련의 행위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취향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형성된다.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로 유명한 넷플릭스의 사례를 보자. 사람들은 넷플릭스의 영화를 감상하고 별을 매기는데, 오락영화(<캡틴 아메리카>)보다 예술 영화(<호텔 르완다>)의 별점이 대개 높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의 시청 패턴을 분석한 결과는 반대였다. 사람들은 예술 영화는 지루해하고 잘 보지 않았지만, 오락 영화는 더 자주 그리고 몰입해서 봤다. 재밌는 사실은 별점을 타인이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낫다고 여겨지는 것까지 고려해 선택한다. 잘난 척, 있어 보이는 척을 하려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사회에 위계가 있어서일까, 사람들은 취향에서도 특정한 위계를 포착한다. 물론 실제 취향에 위계는 없을 것이다. 좋은 취향, 나쁜 취향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분명 취향은 자신을 다른 집단과 구분하는 수단으로서 사람들에게 선택된다.
이러한 ‘취향의 전략’은 음악에서도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어떤 음악을 듣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음악을 듣느냐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차별화한다. 음악 마케팅으로 그간 재미를 본 현대카드가 최근 잇달아 Music Library와 Vinyl & Plastic 샵을 이태원에 냈다. 최근 LP판에 대한 인기가 급작스레 늘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LP판에 대한 사람들의 향수가 살아난 걸까? 하지만 현대카드의 고객들은 LP판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젊은 층이다. 트렌디한 현대카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LP판이 아니다. '어떻게 음악을 소비하는지'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고 싶은 것이다. 비틀즈의 음악은 누구나 집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Music Library에 가서 듣는 것은 다르다. 그들의 방문 경험은 셀카와 함께 Instagram을 통해 퍼진다. 현대카드가 영리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바야흐로 취향의 전성시대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고, 존중받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과거에 종교, 관습, 전통이 개인에게 갖던 영향력은 상실되고 있으며, 그 빈 틈을 취향이 메우고 있다. 하지만 막상 취향의 본질은 탐구된 바가 없다. 취향은 깊은 해자로 둘러싸인 성과 같다. 다원주의가 강화되면서 취향은 사적인 영역, 그래서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깊이 묻지 않는다. 그러한 물음이 때로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취향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질문들과 다양한 사례들로 누구도 건너가려 한 적 없는 깊은 해자를 넘어가려 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꽤나 담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