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북 리뷰
"시체가 있는 드라마여야 흥행한다." 최근 드라마계에 도는 우습지만 섬뜩한 이야기다. <나쁜 녀석들>, <시그널>에 이어 최근 OCN <터널>까지 범죄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스크린관을 지배하고 있는 범죄영화까지 고려하면, 범죄물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극장뿐만 아니라 안방까지 우리는 늘 범죄라는 콘텐츠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범죄물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실제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지식은 아직 미약하다. 모르는 사람에 의한 살인과 지인에 의한 살인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성폭력 범죄자의 대부분은 성욕이 왕성한 20대일까? 쉽게 답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나 범죄는 두렵고 끔찍하다. 그래서 최대한 멀리, TV나 극장 속에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범죄는 개인적 비극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문제이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정확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범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묻는다.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대표적인 강력 범죄 중 하나가 강도이다. 총기를 든 강도, 별 다른 흉기가 없는 강도 중 어느 쪽이 더 위험할까? 총기를 보면 우리는 벌벌 떨겠지만, 실제 더 위험한 쪽은 흉기가 없는 강도이다. 왜일까. 피해자가 흉기가 없는 범죄자를 얕잡아 보고 저항하기 때문이다. 결국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고 격화되면 살인까지 이어진다. 대다수의 범죄가 나름의 목적성과 합리성을 지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강도의 목적은 금품 갈취이다. 따라서 강도를 만나면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고 떠날 수 있도록 순순히 금품을 내주는 편이 낫다. 이처럼 범죄에 대해 이해할 때 우리는 더욱 안전해질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가장 잘못된 오해와 억측이 많은 것이 성폭력 범죄다. 성범죄는 젊은 시절의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성폭력 범죄의 연령별 구성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30대(21%)와 40대(21%)의 범죄자 비율은 20대(27%)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연구에 따르면, 성폭력은 성욕 때문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서 자신의 결정권과 자율성이 상실된 무력감’에서 비롯한다고 한다. 근래 통계 자료에 성폭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보다 성범죄가 더 많이 발생해서일까? 성폭력 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 숫자에 잡히지 않는 범죄다.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신고율이 낮기 때문이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조금이나마 개선됨에 따라 신고가 늘었다. 따라서 최근의 증가 추세는 수면 아래 발생하던 성범죄 피해가 ‘재발견’되고 있는 단계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이처럼 이 책은 강력범죄뿐 아니라 사이버범죄, 데이트 폭력까지 다양한 범죄에 관한 오해와 진실들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박수 이론 공식’을 제시한다. 범죄란 범죄 동기와 범죄 기회의 곱이다. 예를 들어, 제2금융권 은행은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해 강도 범죄 기회가 많다. 실제 지난 4월 경산 농협에서 총기 강도가 침입해 속수무책으로 털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테러는 범죄 동기가 매우 강한 확신범에 의해 발생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국경 보안 강화에 수많은 돈을 쏟아부어 테러 기회를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그럼에도‘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처럼 자생적·개인적 차원의 테러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범죄 동기가 확고한 테러범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결국 범죄를 근절하려면, 범죄 동기와 범죄 기회 중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모두를 줄이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전한 사회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안전은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나오는 것처럼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 중 하나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안타깝게도 인간과 인간이 부대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 부대낌 속에서 안전은 종종 짓이겨지고, 스물스물 범죄가 발생한다. 범죄가 많아질수록 타인에 대한 신뢰는 허물어진다. 우리는 범죄자를 종종 이렇게 일컫는다. “인간도 아닌 놈”’.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깨질 때, 그것이 받치고 있던 사회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범죄는 구성원들이 함께 마음 아파해야 할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냉철한 판단과 이성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다. 더 이상 범죄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집어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