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 존 레넌> 전 리뷰
난 록 음악은 좋아하지만 비틀스의 팬은 아니다. 비틀스의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은 몇 번 했었다. 락을 좋아한다면서 비틀스를 안 들어봤다고 얘기하는 건, 냉면을 좋아한다면서 평양냉면은 안 먹어봤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으니까. 평양냉면 마니아인 내 친구 한 녀석은 공교롭게도 비틀스의 광팬이다.
그런 일종의 부채감 반, 호기심 반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Imagine 존 레넌> (부제: 음악보다 아름다운 사람) 전에 다녀왔다. 존 레넌의 불우했던 유년기부터 바야흐로 대중음악의 역사를 써 내려가던 비틀스 시기, 이후 세기의 연인 오노 요코를 만나 평화와 사랑을 부르짖던 사회운동가로서의 삶까지 레넌의 인생을 총체적으로 잘 다룬 전시였다. 레넌과 비틀스에 대해 최소 10분은 떠들 수 있을 테니 이젠 어디 가도 락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레넌에 대해 이번 전시가 충분히 다루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다만 그게 아쉽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존 레넌에 대한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료와 사실들을 한정된 전시 공간에서 모두 다룰 수도 없고, 전시 기획 의도와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빼는 게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을 나와서도 레넌의 불꽃같았던 삶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남겨 둔다. 존 레넌 전시가 (잘) 알려주지 않은 3가지 이야기다. (비틀스의 팬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볼 필요가 없다!)
전시에서 존 레넌은 자신을 부르는 팬의 소리를 듣고 뒤돌아 보았다가 총에 맞은 걸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 그를 암살한 마크 채프먼이 레넌의 광팬이라는 썰이 있다.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채프먼의 집에서 비틀스 앨범이 발견되었다. 둘째, 채프먼은 레넌을 따라 하기 위해 일본 여성과 결혼했다. 셋째, 암살이 있기 5시간 전 채프먼은 레넌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첫 번째의 경우, 해당 앨범은 채프먼이 아닌 아내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비틀스의 음악에 빠진 적이 있긴 하지만 제일 좋아한 건 토드 룬드그렌이었다. 두 번째는 확증 편향에 불과하다. 비틀스를 좋아했고 일본인 아내가 있다고 존 레넌의 광팬일까? 마지막은 채프먼의 사인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실제 채프먼은 사인을 안 해주기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사인을 끈질기게 요구해 받아낸 적이 있다.
실제 마크 채프먼이 존 레넌을 죽인 결정적 동기가 된 건 레넌의 반기독교적 발언 때문이다. 레넌은 "예수보다 비틀스가 유명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희대의 망언으로 손꼽힌다), 이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이자 정신 이상 증세가 있던 채프먼의 증오를 샀다. 채프먼은 젊은 시절 레바논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러나 채프먼이 존 레넌만 타깃으로 삼은 건 아니었다. 그는 자니 카슨이나 데이비드 보위 등 다른 유명인들도 죽여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존 레넌이 죽게 된 건 단순히 그에게 접근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집 앞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정도였으니까. 마크 채프먼은 존 레넌을 만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데이비드 보위가 출연하는 브로드웨이 쇼의 앞자리를 예매해 놓았다. 레넌이 집에 틀어 박혀 있었다면 보위가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기의 사랑에도 부침은 있는 법이다. 요코와 레넌이 별거하던 시기를 '잃어버린 주말(Lost Weekend)'이라 칭한다. 이때 레넌은 '홀로' 캘리포니아주 LA로 떠났다고 전시는 기재하고 있다. 물론 레넌이 홀로 비행기를 탔을 수는 있겠지만, 그가 캘리포니아에서 혼자 살았던 건 아니다. 당시 레넌은 요코와 자신의 비서였던 중국계 여성 메이 팡과 동거했다.
놀라운 건 메이 팡과 레넌의 관계를 주선한 게 요코 본인이었다는 점이다. 요코는 자신의 비서인 팡에게 레넌이 널 좋아하니 '육체적 관계'를 맺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둘의 결혼 생활은 레넌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 때문에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요코가 메이 팡에게 레넌과 만나라고 말한 건ㅡ아무리 그래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ㅡ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랑 바람을 피우는 게 좀 더 낫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레넌과 팡은 1년 여의 캘리포니아 생활을 마치고 함께 뉴욕으로 돌아온다. 레넌은 요코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았지만, 딱 한 번 요코를 만나러 가더니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마성의 여자...) 요코와 레넌은 재결합 후 바로 아이(션 레넌)를 가지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후, 레넌은 전시에 소개된 것처럼 가정적인 남자로 '환골탈태'한다. 그의 과거 행보를 돌이켜 보면 참 믿기 힘든 반전이다.
전시 중반부쯤 가면 레넌이 죽을 때 착용했던 피 묻은 안경을 촬영한 사진을 볼 수 있다. 요코가 레넌이 죽은 다음 해에 직접 찍었는데, 그녀는 이를 자신의 앨범 <SEASON OF GLASS>의 재킷에 넣었다. 안경과 물 잔 너머의 맨해튼 풍경이 흐릿하고 음울하게 표현된, 레넌을 잃은 요코의 슬픔이 느껴지는 잘 찍은 사진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조금은 찝찝했다. 죽은 자의 물건을 태우는 대신 음반 표지에 넣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오노 요코는 2009년 뉴욕에서 열린 <John Lennon: The NYC Years> 전에도 레넌이 암살당하던 날 입었던 피 묻은 옷가지와 안경을 전시한 적이 있다. 2013년에도 요코는 레넌의 피 묻은 안경 사진과 함께 총기 사용에 반대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이처럼 요코가 레넌의 유품을 전시하고 작품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취지는 알겠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냐는 것이다. 일부 비틀스 팬들은 요코가 레넌의 죽음을 이용해 명성과 부를 취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요코의 작품 활동에 대한 논란은 사실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해묵은 논쟁과도 일부분 맞닿아 있다. 암살당한 자의 피 묻은 안경은 그 자체로 끔찍한 물건이며, 레넌의 가족을 포함해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상기시킨다. 유족들이 보통 유품을 태우는 이유는 망자를 추모하는 의미가 크겠으나, 죽음에서 비롯되는 슬픔, 우울 등 여러 불편한 감정을 잊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요코처럼 30년이나 유품을 피도 닦지 않은 채 그대로 보관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공개하는 건 분명히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레넌의 안경은 단순한 유품을 넘어서 미국의 끔찍한 총기 제도와 인간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요코의 앨범 재킷 사진이 예술적이라고 느꼈던 이유는ㅡ그녀가 사진을 잘 찍기도 했지만ㅡ무엇보다 그 안경이 레넌이 암살당했을 때 착용했던 실제 안경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위적으로 조작된 안경이었다면 관람객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더불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 레넌의 연인이자 그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도한 요코라는 사실은 작품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한다. 이때, 레넌의 피 묻은 안경은 유명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넘어서 암살로 일순간 파괴된 요코 자신의 삶을 나타낸다. 요코의 작품이 레넌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과한 측면이 있다. 이는 그녀가 선택한 적 없는, 미망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되기 때문이다.
존 레넌이 죽은 지 벌써 40주년이 되어가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그리 다르지 않다.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폭력적인 현실은 여전하고, 그가 부르짖었던 평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서 그의 명곡 <Imagine>을 감상할 수 있다. <Imagine>이 연주되는 3분 남짓만이라도 눈을 감고 레넌과 함께 몽상가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