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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현 Jun 21. 2017

야수주의를 가장 빨리 팽개친 야수파의 거장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 전시 리뷰 

  처음 야수파의 그림을 만난 건 미술 교과서였다. 조악하게 축소된 사진이었지만 잔상은 또렷이 남았다. 피처럼 새빨간 색채와 거침없는 붓질로 도배된 그림이 쉽게 잊힐까. 미술에 관심이 많이 없더라도 강렬한 특징 때문에 야수파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누구나 1등만 기억하듯 야수파 또한 마티스로 기억될 뿐, 그 외의 야수파 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마티스가 야수주의로 기울게끔 한 사람은 따로 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다. 


 블라맹크는 남달리 자유롭고 반항적인 성향을 지녔던 것 같다. 부모님이 모두 음악가인 환경에서 자라나서인지 음악, 글쓰기, 그리고 미술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20대 초반에 그는 군대에서 복무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오히려 그의 반동적 기질을 강화시켰다. 군 제대 후 그는 야수파를 함께 이끈 친구 드랭과 스튜디오를 빌려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접어든다. 

 "나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추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관습과 당시의 생활을 혁신하고자 했다. 즉, 자연을 자유롭게 하며 내가 연대의 장군이나 대령들만큼이나 증오했던 낡은 이론과 고전주의적 권위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키고자 했다… 단지 나 자신의 눈을 통해 비춘, 전적으로 나의 세계인 그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거대한 충동을 느꼈을 뿐이다.” (사라 위트필드, <야수파>에서 인용)


 그의 초기 작품, <부지발의 라마신 레스토랑>을 보면 사람들이 토마토를 마구 던지는 어느 스페인 축제 속에 있는 듯하다. 땡볕 아래 토마토의 과즙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레스토랑과 거리는 온통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실제 거리는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그리지 않고, 느끼는 대로 물감을 쥐어짰다. 색채의 난장을 통해 야수파는 ‘재현’이라는 미술의 관습에 균열을 냈다. 야수주의 이후 작가들은 이제 세계의 재현이 아닌 내면의 표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현대 미술로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된 것이다.

Restauragnde la Machine a Bougival (1905)


 자, 이제 워밍업을 했으니 전시를 보자.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야수파의 작품은 없다! 블라맹크의 작품은 있으나, 야수주의를 내던진 1908년 이후의 작품들만이 한국에 왔다. 주최 측의 세심함(?)이었는지, 리플릿에도 ‘현대 모던아트의 거장’이라는 모호한 수사가 붙어있을 뿐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처음에는 속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야수파의 그림을 보고 싶으셨던 분이라면 나처럼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림들을 찬찬히 훏어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기 시작했다. 블라맹크는 야수주의로만 기억될 화가가 아니었다.

 1908년 이후 그는 자연에 심취한다. 자연을 그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다. 한 때는 재현을 파괴하는 최전선에 서 있던 사람이 이제는 사실적인 풍경화를 엄청나게 그려대기 시작했다. 작용 과반 작용의 몸소 증명하듯, 그는 본인이 시작했던 야수파를 버리고선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선회했다. 

La Route sous la neige (1931)


 특히 그는 눈 덮인 마을을 매해 겨울마다 그린 것 같다. 전시장이 온통 서늘한 눈밭이다. 마을은 고요하고, 바구니를 든 여자가 밖에서 서성인다. 두껍게 칠해진 눈은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눈이 많이 쌓여 다 녹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길 끝에는 늘 하늘이 도사리고 있다.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잘 가늠이 되지는 않는다. 곧 어둠이 깔릴 황혼 같기도 하고, 이대로 날이 밝아질 여명 같기도 하다. 눈은 인간이 가지고 있던 한줌의 문명을 덮어버린다. 인간은 비로소 자연을 마주한다. 눈 덮인 길 위에서 하늘을 마주 보고 있는 그림 속 연약한 인간처럼, 블라맹크는 설경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블라맹크의 삶은 진자처럼 양극단을 오간 것처럼 보인다. 군인에서 화가가 되었고, 야수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대단한 용기다. 그는 어중간한 회색 지대에 서 있던 적이 없다. 요즘 말로 하면, ‘개 X마이웨이’랄까. 하지만 그에겐 이것이 그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내면의 외침과 본능에 충실했을 뿐. 그는 야수주의를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의 삶에서 야수를 바라본다. 광야에 홀로 우뚝이 서 있는 야수 같은 남자를. 

 “나는 조금의 후회도 없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저온 살균된 우유, 의약품, 비타민, 대체식품, 모조품, 장식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번드레하기만 한 알아보기 힘든 추상 예술 등 …. 나는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난 아무것도 원한 것이 없었다.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내가 본 것을 그렸다.” (<Arts>에 기고한 블라맹크의 유언)



모리스 드 블라맹크 (1876~1958)



※ 전시 정보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일시 : 2017년 6월 3일 ~ 8월 20일 

시간 :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오후 7시)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층

가격 : 성인 13000원 / 청소년 10000원 / 어린이 8000원 / 유아 6000원

주최 :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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