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사회 시스템

선진국의 기준과 우리가 원하는 사회

by 백작가

‘선진국의 기준은 뭘까? ‘ 난생처음 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화두다. 예전에는 그냥 힘이 센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강한 나라가 선진국이란 사실은 실제로 맞다.

템즈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전경 copyright 백작가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의식이 바뀌면서 이에 대한 생각도 변화되어 가는 것 같다. 실제 외국 생활을 해보고 나서 나도 선진국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요즘엔 사회가 안정되어 있는 나라, 즉 상식과 규칙이 잘 통하는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 기준에서 보면 영국은 분명히 선진국이다. 영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내 생각에 공중도덕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여행작가도 영국인의 특징 중 하나로 법규를 잘 지킨다는 것으로 꼽았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잘 지키는 편이다. 가령, 플리머스 시내 대형마트, 큰 상점 등의 대형 주차장은 대부분 고객 대상으로 2~3시간가량 주차를 무료로 제공해준다.


나갈 때 영수증 확인 같은 건 없다. 그래서 그 시간 안에 볼 일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차를 대도 되는 셈인데, 같은 건물 윗 층이나 바로 옆에 있는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시티센터라고 해봤자, 매우 작기 때문에 제한시간 내에 충분히 볼 일을 볼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유명 관광지에는 주차 시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내가 살았던 플리머스도 메이플라워 스텝이 있는 바비칸의 경우 주말에 유료 주차장도 자리가 없을 때가 많다. 사실 주변 골목이나 항구 주변 여유공간에 차를 대도(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기는 하지만) 되지만 굳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는 사람들이 많다.


또 다른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주는 것 중 하나는 남에 대한,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국인들한테 가끔 했던 우스개 소리 중 하나가 유럽의 공항을 이용하다 보면 영국행 비행기 줄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워브릿지 야경. copyright 백작가


어떻게 알아볼까? 답은 ‘뚱뚱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줄에 가서 서면 된다’이다. 농담할 때는 이 예를 들지만, 영국행 줄을 구별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쏘리”, “땡큐, 치어스(감사합니다)” “플리즈” 란 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리는 줄이 바로 영국인들 줄이다.


영국인들은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란 표현이 몸에 밴 것 같다. 한 번은 공원에서 축구하던 아이들이 잘 못 찬 공을 잡아서 돌려주었는데 아이가 “감사합니다” 란 말을 안 한다고 부모가 바로 현장에서 혼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렇듯 영국인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미안하다, 감사하다란 표현을 생활화하도록 교육받고 있다. 마음이 본인의 언어를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용하는 말이 심성과 인격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이들의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의 생활화는 서로 어울려 사는 사회(특히 영국같이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일상생활에서의 분쟁을 피하는 좋은 방법으로 작용한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인격을 존중하는 이런 영국의 모습은 뉴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영국의 TV 뉴스는 국내 문제보다 해외의 기아, 전쟁, 인권 등의 이슈가 항상 톱뉴스다.


길을 가다 거리에서 홈리스를 보면 동전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쭈그리고 앉아 밥은 먹었냐, 어디서 자냐 등을 물으며 대화하고 있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지나가다 낯선 사람이 어려움에 빠진 것을 봐도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보며 도와주려고 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꽤 있다.


2000년대 초반 영국에 여행을 갔을 때 런던에서 스코틀랜드로 가는 투어를 예약한 적이 있다. 해당일 약속시간에 기차역으로 나가보니 여행사에서 온 분들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다.


나는 무척 당황하여 전화도 걸고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으나 투어 그룹이나 여행사 관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때는 한창 바쁜 출근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냐?” 하면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정을 설명하니 어떤 중년 신사는 명함을 주며 “만일 여행사에 당신이 시간에 맞게 왔다는 것에 대해 중명이 필요하면 연락해라, 경찰에서 증언하겠다”라고 했다.


이렇게 “쏘리, 땡큐”에서 비롯된 사랑과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안정되고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밑바탕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영국 생활 초기에는 가구, 가전제품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검트리’란 중고품 거래 사이트를 많이 이용했다. 이때 놀란 사실이 있다. 필요한 물건을 찾으면 어플 상의 메신저나 이메일로 연락을 하고 거래가 성사되면 현장에서 돈과 거래하는 방식인데, 대부분 물건을 가지러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다.


집으로 가면 물건을 밖으로 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들어오라고 한다. 이건 거의 100%가 그랬다. 처음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의 집에(그것도 외국에서) 불쑥 혼자 들어간다는 게 꽤나 꺼려졌다. 솔직히 무서웠다. 납치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이다. 낯선 이를 집에 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었다. 중고품을 사 가면서도 현장에서 꼼꼼히 확인을 안 하고, 그냥 돈만 내고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다.


파는 이의 광고 속에 나온 설명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 거래를 할 때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심지어 경찰서 앞에서 하라는 요령이 인터넷에 나와 있기도 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함께 사회가 안정되어 있지 않고서는 영국과 같은 중고품 거래 관행은 생겨나기 힘들 것 같았다.


부러운 영국 사회의 모습 중 하나였다. 선진국이란 돈 많고, 군사력 강한 나라가 아니다. 분명, 서로 도와가며 나눌 줄 알고, 인간에 대한 배려와 인격에 대한 존중을 통해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스카이가든에서 바라본 런던 시내 전경 copyright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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