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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현 Feb 22. 2022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전방십자인대와 연골을 다쳐 병원에 한참 입원해 있을 무렵이었다. 병원에만 콕 박혀 있는 게 너무나도 답답해서 어떻게든 밖에 나가 무언가 하고 싶어졌던 나는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섰다. 두 달 만의 외출이었다. 오전 열 시를 가득 채운 아름다웠던 공기, 눈이 내린 지 얼마 안 된 거리, 분주했던 출근 시간이 지나 여유로워진 분위기. 내 오른쪽 무릎만 빼고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영화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랐다. 픽사에서 만든 <코코>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멕시코가 배경인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는 기억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보여줬다. 영화에서 보여준 죽음은 기억이 바탕이 되었다. 이승세계와 저승세계가 따로 나뉘어 있지만 저승세계에 있다고 해서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는 건 아니었다. 영화에서 말하는 진정한 죽음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때'였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 년에 단 한 번, 저승에 있는 사람들이 이승으로 넘어와 각자의 가정에서 축제를 즐긴다. 이를 '죽은 자들의 날'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일종의 명절인 셈이다. 저승에 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의 날에 축제를 즐기려면 이승세계와 저승세계를 연결해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지만 아무나 다리를 건널 수는 없다. 이승에서 저승에 있는 그들을 기념해 줘야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다. 이승에서 죽은 자들의 날에 아무도 기념해주지 않는다면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방식은 우리나라에서 지내는 제사와 비슷하다. 해골 조형물과 메리골드로 장식을 한 곳에 죽은 자의 사진을 놓고 축제 동안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죽은 자들의 날에 저승에 있는 대상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기념해주지 않는다면 저승에서마저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기억되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가 끝나고 많은 생각이 찾아왔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할까. 내가 죽어도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도 아무도 기억해주지 못할 때가 진짜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의 어떤 걸 기억할까.


그러다 '김상현'이라는 이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서로 상'에 '어질 현'. 둥글둥글 착하고 현명하게 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윤숙, 미숙, 현숙, 인숙, 명숙. 다섯 딸을 키우며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였을까. 할아버지는 당신의 첫 손자 이름을 지어줄 때 세상을 둥글둥글 착하고 현명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것 같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이름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이름, 제목을 따라 간다고 하던데 그 말이 진짜인가 싶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셨다. 그래서 대화를 해야 할 땐 언제나 가까이서 큰 목소리로 말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목소리가 크셨다. 가끔 할아버지 댁에 놀러갈 때면 저 먼 곳에서부터 할아버지 목시리가 들려와서 반가울 정도였으니까.


나와 내 동생은 할아버지 댁에 놀러갈 때면 텔레비전을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자막이 있는 프로그램들을 보셨는데, 나와 재현이는 나이도 생각도 어렸던 탓에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만 보면서 재밌어했다. 할아버지는 자막도 없는 프로그램을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보곤 하셨는데, 재현이와 내가 낄낄거리며 웃을 땐 할아버지도 덩달아 웃곤 하셨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 귀가 안 들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모두가 함께 웃고 있다는 생각에 더 크게 웃곤 했다. 그 모습을 할아버지는 좋아하셨던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면 한 톨의 밥풀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은 밥그릇을 할아버지께 보여드리곤 했다. 그럼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며, 볼록 튀어나온 배를 만져주곤 하셨다. 약주를 하실 때면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한 잔씩 따라드리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나를 아이처럼 바라봐주셨다. '돈을 벌게 되면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꼭 용돈을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갑지기'였다.


한 음주 운전자가 할아버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박아버렸다. 그리고 두려웠던 나머지 도망갔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영정사진도 찍어 두지 못해 막내이모의 결혼식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썼던 우리 할아버지.


갑작스럽지 않은 죽음이 어딨겠냐마는 내가 겪은 첫 번재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럽게 죽는다는 건 주변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나에게 많은 걸 알려주었지만, 자신의 마지막은 알려주지 않았다. 내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럼 그는 아직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진 않는 거니까. 어디선가 나를 바라봐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첫 번째 죽음 이후, 여러 죽음들이 내 주변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파서, 사고로, 스스로, 갑자기 떠나게 된 사람들.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기억할 모습들을 더는 쌓을 수 없게 되니까.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남겨두려는 마음에 슬픔도 같이 오는 모양이다. 기억은 점점 사라지니까.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결국 정말로 죽게 되는 것이니까. 더욱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더욱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슬픔을 불러오는 건 아닐까.


죽음에 대하여 기억에 대하여 슬픔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당신들 곁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마음인데.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귀하게 지어준, 값진 의미를 부여한 내 이름 세 글자를 잘 쓰고 싶다. 이름대로 살아가지 못하더라도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매일 타는 버스에서는 기사님께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를 해야겠다. 커피를 내려주는 직원 분께 고맙다고 마음을 전해야겠다. 누군가의 식사를 챙겨주느라 매일 조금 늦게 식사를 하시는 식당 어머니들께도 고생 많으시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뜨거운 마음을 갖고 따뜻하게 살아가고 싶다.

책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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