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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익 Feb 06. 2019

(서평)『책을 읽는 방법』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 히라노 게이치로 저 / 문학동네/ 이원종 서평



꼭 속독법에 대한 책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독서에 관한 책들은 어느 정도의 속독을 권장하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어떤 부분에서 막혀 몇 번이고 다시 읽다보면 시간낭비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속독에 대해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책 제목인 '책을 읽는 방법'이란 속독이 아닌 '슬로우 리딩'이라 말할 정도로 속독은 진정한 책읽기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책을 빨리 읽고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마다할 사람은 없다. 저자 역시도 그런 생각으로 오랫동안 속독을 시도해 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천천히 꼼꼼하게 읽지 않으면 도무지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다른 독서가들도 역시 책을 느리게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서점에는 왜 그렇게 속독 관련 책들이 넘쳐나는 걸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속독 컴플렉스'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것이 그런 속독관련 서적들이며, 또한 속독 관련책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서'이다. 즉, 속독을 매개로 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잠재력이나 적극적인 태도 등 속독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들도 많다는 것이다. 속독술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논리는 문자군 전체를 사진을 찍듯 영상으로 새겨서 무의식에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저자의 반박은 여지가 없다.


-  이러한 당치 않은 이야기는 심리학이나 뇌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무지를 파고드는 궤변인데, 훈련 여하에 따라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왠지 믿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슬픈 본성이다.(38쪽)



'슬픈 본성'이라고까지 하는 것을 보니, 그간 읽어왔던 속독에 관한 상식이 위태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실습 텍스트로 쓰여진 글들이 대부분 소설 등의 문학작품인 것을 보면, 일관되게 '천천히 제대로 읽기'를 강조하는 저자의 글이 한결 쉽게 받아들여진다. 소설은 원래 속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독자들이 속독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전해주고자 하는 '슬로우 리딩'의 의미를 이해하고 '속독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책읽기를 즐기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은 분명히 인식해야겠다. 슬로우 리딩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책을 수십 수백권을 읽었다 해도, 그 책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없으면 사람들은 그런 독서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권을 읽었다고 해도 그 내용과 감상을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독서의 의미가 있다. 면접을 보는 상황에서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면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두번째는 '사전을 찾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는 독서를 할 때만이 아니라 TV를 보거나 대화를 하다가도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나중에 사전을 찾는다. 그러면 어휘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는게 당연하다.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모르는 영어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지만 잘 모르는 우리말 혹은 한자어가 나오면 대충 짐작하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 나의 경우에도 매번 그 뜻을 모르면서 넘어갔다가 최근에서야 인터넷 국어사전으로 검색해 본 단어가 '삼투압', '불가지론', '자가당착' 과 같은 것들이었다. 직관으로 짐작을 해도 비슷한 의미가 되기는 하지만 잘못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 사전을 찾아 명확한 뜻을 아는 습관은 반드시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  잘 모르는 말이 나오면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 반드시 사전을 찾아보는 것, 그것은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60쪽)



세번째로 필요하다 느끼는 지침은 '재독'하는 것이다. 매일밤 한권의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올리는 '센야센사쓰(천일천책)' 프로젝트를 완수했던 마쓰오카 세이고는 반드시 두번 이상 읽은 책에 대해서만 감상문을 썼다고 한다. 그래야 그 책을 잘못 이해하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똑같은 책이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시기에 따라 그 의미와 공감도는 전혀 달라지므로, 재독의 가치는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책을 오년 후, 십년 후에 가끔씩 꺼내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자신의 성장의 흔적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책을 읽는 도중에, 그리고 읽고난 후에 사색을 하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책을 다 읽고나서 사색을 하는 것부터가 진정한 독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속독만이 올바른 책읽기의 방법으로 인식되는 와중에, 그와 정반대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담은 책이 있어서 반갑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독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이 더 편하게 다가오고, 의문들을 풀어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이 책에는 8개의 '슬로리딩 실천'을 위한 텍스트가 주어지는데, 국어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텍스트와 저자의 슬로우 리딩 적용법을 읽어본 결과, 슬로우 리딩이라고 해서 그것이 처음부터 만만치는 않다는 사실이다. 좀더 재미있고 정확히 읽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의식적인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슬로우 리딩'의 관점에서 이 책을 받아들이고 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면, 역시 책은 어떤 방법으로 읽어도 괜찮다는 것이 진리이다. 그러니 책읽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쓰는 사람은 누구나 읽는 이들이 자신의 책을 슬로 리딩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글을 쓰는 것이다.(23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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