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된 회사
일본전산 이야기 - 신화가 된 회사 /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이원종 서평
또 다시 무지를 밝히는 얘기가 되겠지만, '일본전산'이야기라고 해서 일본의 IT산업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가만히 글자를 살펴보니, 컴퓨터, 혹은 전자계산기를 뜻하는 '전산'과는 다른 뜻으로 쓰인 말이었고 어쨌든 '일본전산'은 1973년에 창업해서 지금까지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해온 일본의 한 회사이름이다.
항상 듣는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세계 1위인데 반해, 노동생산성은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전산'의 경영 철학도 어찌 보면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남들보다 두 배로 일하라', '주말에도 일하라'는,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한다'라는 행동지침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웬만큼 일 많이 시키는 기업들보다도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전산의 직원들은 회사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으며, 이직률 또한 최저수준이라고 한다.
일본전산의 출발은 사과 궤짝위에 올라 '5년 후에 100억엔, 10년 후에 500억엔...'을 외쳤던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초라했다. 사장을 포함해 단 네 명의 직원이 시골의 허름한 창고에서 시작한 회사는, 그러나 현재엔 140개 계열사와 13만 명 직원을 거느린 매출 8조원의 막강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로지 기술력과 끈기 하나만으로 이루어냈다는 '일본전산의 정신'은 무엇일까.
나가모리 사장이 말하는 일본전산의 3대 정신은 정열, 열의, 집념이다. '할 수 있다'를 외치는 순간, 할 수 있는 회로가 심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이들은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수도 없이 외치게 한다. 인간의 능력이란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이론을 들이대지 말고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시도하고,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늘어져야 마지막에 결국 이긴다는 것이다.
- 남들이 두 손 들고 떠날 때까지, 끝까지 버티면 못 해낼 것도 없다. 모두가 포기하게 된다면, 우리밖에 남는 사람이 없게 될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부전승'이다. (37쪽)
이들이 실시했던 직원채용 테스트가 재미있다. 한 마디로 '골 때리는' 입사시험이라 할 만하다. 초창기 영세기업이었던 시골의 회사에, 대기업을 선호하는 우수 인재들이 올 리가 없었다. 일본전산은 1975년 에 첫 공채를 시작했으나, 결국 취업설명회에 한 명도 오지 않아서 그 취업설명회는 직원들의 회식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설명회 끝에 겨우 찾아온 인재들은 '어느 기업에서도 뽑지 않게 생긴 친구들'이었다. A나 B학점은 찾아보기 힘들고, C학점마저도 드문드문 보일 뿐, 게다가 '플레밍의 오른손 법칙(Fleming's right hand rule)'도 모르는 전기공학 전공자까지. 그런 현실에 나가모리 사장은 눈 앞이 캄캄해지며 고민에 빠졌다.
궁여지책 끝에 생각한 방법이 바로 이 '파격적인 시험'인데, 그 종목은 큰 소리로 말하기, 밥 빨리 먹기, 화장실 청소, 오래 달리기 등이다.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할 수 있다'는 정신상태와 행동력을 가진 사람을 기준으로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테스트인데, 예를 들어 '큰 소리로 말하기'는 '대체적으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지원자들에게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는 요구 사항은 알려주지 않은 채, 한 문장을 읽도록 시키는 방법이다.
1978년에 시행된 입사 전형에서는, 지원자 들에게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다. 설익은 밥에, 말린 오징어, 멸치 볶음, 콩자반 같은 씹기 힘든 반찬들 뿐이었다. 식사를 대충 마친 지원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시험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 지원자 들에게 "이미 시험이 끝났다"라고 했다니,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결국 긍정적인 자세로 도시락을 10분 이내에 먹어치웠던 33명을 무조건 합격시켰다고 한다. 이 외에 '화장실 청소' 테스트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프로세스를 보는 것이었고, '오래달리기 시험'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투지를 테스트한 것이었다.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테스트들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은 현재 일본전산의 주요 간부들로 성장했다고 한다. 특히 밥을 빨리 먹는 순서대로 신입사원을 채용했을 정도로, 스피드에 대한 나가모리 사장의 집착은 더욱 대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의 예측은 현대의 기업생존원리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었다. 초창기 영세업체로서 살아남기 위한 첫번째 전략이 '납기일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었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두 배 더 일할 각오를 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경영철학은 '남들이 안 하는 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맡아 해결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의 말처럼, 누구나 어렵고 하기싫은 일을 맡아서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아끼는 직원일수록 호통을 치며 나무란다는 지론, 감점보다는 가점을 주는 방식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적극 격려하는 시스템 역시 그 취지를 잘 헤아려 볼 만하다.
유능한 직원들만 뽑기보다는, 우리나라에도 '인재를 키워서 회사와 같이 성장하겠다'는 철학을 가진 기업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부지런함이야 누구든 인정하는데, 이런 인재들을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의해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 사업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다. 불가능한 제품,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머릿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그 제품을 만들어, 필요한 사람에게 안겨줄 수만 있다면 어떤 사업이든 성공한다.(72쪽)
"사람은 이상만으로 동행해주지 않는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 나가모리 시게노부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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