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중요해도 먼저 이해가 되어야 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아무리 중요해도 먼저 이해가 되어야 한다
야마구치 슈 / 다산초당 / 이원종 서평
이제는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문의 주요 분야인 철학에 대해 쓸모없는 학문이라 쉽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철학 입문서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입문과정을 무사히 거쳐 하나의 소양으로 자리잡기에는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장벽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줌으로써 장벽의 높이를 낮춰주는데, 그 문제인식 과정부터 이미 실용철학이라 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여태까지 존재했던 모든 철학자들의 고민과 사고 대상은 둘 중 하나이다.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즉 What에 관한 문제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 즉 How에 대한 답이 그것이다. 그런데 What에 대한 답변들은 상당 부분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시시하거나 틀린 사실들이 많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사물이 불과 흙, 물, 공기의 4가지 원소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 뻔한 상식인 것처럼. 그러나 대부분의 철학 입문서들은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지루해 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What에 대한 답변은 비록 오류가 있을지라도, 그 결론에 이르게 되는 과정(process)으로부터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거기에는 분명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던 논리와 추론의 흔적, 문제설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철학의 인식과정을 단시간에 이해하고 습득하기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이런 폐해를 피하기 위해 시간 순서에 따른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칸트와 같이 아무리 유명한 대철학자라 하더라도 현재의 삶에 적용시켜 무기로 삼는 것이 쉽지 않다면 과감하게 생략했다.
- 저명한 철학 교수가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아무리 강조한들 '왜' 중요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철학은 아무래도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44,45쪽)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은 원래 고전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뜻하나, 요즘은 한 영화감독의 세계관을 잘 대변할 수 있는 대역,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배우라는 뜻으로 더 잘 쓰이는 듯하다. 프로이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사람들이 외부와 접촉하는 인격으로서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여러 복잡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페르소나는 어찌 보면 필수적인 '가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게도 가정과 직장, 친목 모임, 그리고 나 자신 등 각각 다른 상황에 맞게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가장 극단 적인 예로 군대를 들 수 있는데, 지독한 악인으로 생각되었던 고참들도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가족이나 친구인 것이다.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많은 경우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가면을 무리하게 쓰려하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상황에 따른 인격의 불일치를 너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인격은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것이어서 상황에 맞게 다른 옷을 입지 않으면 인격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다중인격자이며, 그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철학을 통해 이런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소크라테스는 많은 지식인들이 그들의 무지를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대부분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학습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먼저 '무지의 지'가 필요하다. 그 다음 단계는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며 최종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알고 있다는 사실 조차 잊는다. 그래서 어느 분야의 대가를 인터뷰하면 그들은 거의 별다른 비결이 없다는 식의 답변을 하고는 한다.
상대의 말을 듣고 나서 "그래서 결국 ~라는 얘기네요" 라거나 "요점은 ~군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것은 그들의 말버릇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은데, 하지만 그런 말을 듣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십중팔구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의 말을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으로 다시 정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부족하고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다시 반박을 하듯 자꾸 첨언을 하게 되고 상대는 또 자신의 틀로 그 말을 걸러서 정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것은 상대의 말을 정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도 지금껏 갖고 살아왔던 자신의 틀을 깰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쉽게 안다고 말하지 말라는 소크라테스의 지적은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든 꼭 명심했으면 한다.
-" 결국 ㅇㅇ라는 뜻이죠?"라고 요약하고 싶어질 때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새로운 깨달음과 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270쪽)
글쓴이 : 이원종
저자이자 독서경영 전문가로 활동 중인 이원종님은 중앙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이지리더 독서경영 연구소 대표와 오간지프로덕션 북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명지대, 한성대, 오비맥주,인천/안산 CEO아카데미 등 주요 기업체 특강 등을 통해 ‘책만이 살 길이다’, ‘독서경영을 바탕으로 한 성공의 길’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세계화전연구소 성공칼럼니스트, YES24 스타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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