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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료 2천만원 유튜버는 면제, 무명 작가에게는 필수?

증명 서류를 둘러싼 '기준의 불균형'

by 오상익

최근 SNS에서 한 작가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책으로 강연 요청을 받았는데, 정작 기관에서 책의 내용과 무관한 학력 관련 서류를 요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창작자는 결과물로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예술가에게 졸업장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작가님이 충분히 분노할 만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요청을 하는 실무자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실제 강연 시장에서는 10년간 카이스트 교수를 사칭한 사기꾼이나, 허위 삼성 입사 이력을 내세워 책쓰고 강연하다가 발각된 사례 등 신회를 헤치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기관 입장에서는 혹시 모를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증빙 서류를 요구할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관이 이런 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이는 일부 사례입니다.)


진짜 문제는 기준의 불균형에서 발생합니다.

유명인에게는 절차가 생략됩니다. 그들이 강연에 응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기 때문입니다. 게런티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대형 유튜버에게 졸업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스타 강사는 고졸이지만, 아무도 그의 학력을 묻지 않습니다. 왜냐? 시장에서 가치가 있으니 예외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반면 무명작가에게는 서류가 요구됩니다. 안타깝게도 이는 결국 개인 브랜드 경쟁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만약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강연자라면, "그런 서류를 요구하면 강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당당히 거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외국계 기업에서 특정 주제를 영어로 강연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저는 단 한 명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담당자 역시 그 이상의 인물을 찾기 어렵다고 보였습니다. 이처럼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 순간에는 칼자루는 강사가 쥐게 됩니다. 시장은 '갑'과 '을'이 끊임없이 바뀌며 가치가 정해지는 냉정한 현실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강사는 그럴만한 자신감이 없기에 서류를 제출하며 기회를 택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학교 강연 시 요구되는 범죄경력조회 등 법적 필수 서류는 당연히 예외로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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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기관도 본질과 무관한 관행적인 서류 요구는 간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쓴 작가의 메시지를 듣고 싶으면서 도대체 왜 그의 학위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그 작가의 훌륭한 문장과 강연 속 메시지, 그리고 창작물 자체가 가장 확실한 증명서가 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오래된 관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응책은 무엇일까요? 현재 세상의 기준이 그렇다면, 그 작은 기회마저 놓치지 않기 위해 일단 요구하면 응해주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입니다. 요구를 거부한다면 기회는 다른 작가나 강사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류를 받아들이는 건, 아직 내가 '대체 불가능한 강사'가 아니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부당한 관행에 계속 불편함을 제기하는 작가나 강연자들의 목소리 덕분에 업계는 서서히 바뀐다는 점입니다. 변화는 늘 문제의식 있는 소수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사점

1. 강연자는 서류가 아니라 콘텐츠로 증명해야 한다.

2. 기관은 학력보다 결과물을 신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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