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우아한 식사

결혼 2주년, 남산 하이얏트 호텔에서

by 오상익

#오간지 결혼2주년 feat.오하준


1.
"첫 월급을 타던 날, 나는 그녀에게 크게 한턱 쓰고 싶었다. 평소 그녀와 그럴듯한 찻집에서 차 한잔 나누거나 영화 한 편 본 적 없었다. 고작 한강변 같은 곳에 앉아 있거나 전화로 데이트를 해 왔던 터였다. 시내 중심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가 코트를 벗고 내 앞에 앉았다. 분위기 좋은 이런 곳에서 그녀와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양복을 단정히 입은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다가와 메뉴판을 놓고 갔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꽤 부담이 되는 음식값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한 개를 시켜 둘이 나눠 먹자고… 웨이터가 혹시 얼굴이라도 붉히면 어쩌나 지레 걱정이 되어 잠깐 망설이고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그녀가 조용하게 부탁했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내 우려와는 달리 웨이터는 미소를 지었다.


음식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웨이터는 두께만 반으로 얇아진 같은 모양의 스테이크를 두 개의 접시에 담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안도하며 그녀와 눈을 맞추고 웃을 수 있었다. 그분은 딸려 나오는 음식까지 모두 2인분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 주위의 멋쟁이 손님들도 우리가 한 개를 시켜 나눠 먹는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으리라.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분은 시종 편안하고 인자한 미소를 보내 주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먹고 마시는 데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국밥처럼 양 많고 싼 음식은 사먹어도 냉면집 한번 가 본 적이 없었다. 큰 음식점 앞에만 가면 가격도 알아보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피하기 일쑤였다. 한번은 고향 친구가 놀러 와서 큰맘 먹고 명동까지 구경 나갔지만 유명한 음식점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그냥 돌아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와 결혼했다. 이제는 나도 넉넉하게 살지만 그녀가 입는 옷은 여전히 수수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맑고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기에 잘 차려 입은 그 어떤 여성보다 아내가 좋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그날의 그 우아한 식사를 잊지 못한다. 상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아내의 마음과 사려 깊은 그 신사의 미소를 떠올리면 지금도 내 가슴은 따뜻해 온다. "


-윤학, 내 생애 가장 우아한 식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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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4871_10154933080481968_4478059329029672754_o.jpg 내 생애 가장 우아한 식사, 윤학


2.

결혼 2주년 기념으로 남산 하이얏트에 왔다.

(김종인씨도 보고 유명기업 CEO-그 회사직원이 페친이라 말못함- 도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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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91219_10154933080881968_965415846709870233_n.jpg 남산 그랜드 하이얏트 스위트룸 (원래 예약했던 패키지 이상있어서 울며겨자먹기로 변경.. 그러나 대만족)


작년에는 워커힐에 갔는데,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하준이가 생겨 세 식구가 됐다는 것?

덕분에 부부간 대화따윈 없이 전투 식샤를 했다는 것 정도..? ㅠㅠ


암튼 자주는 못 가더라도 결혼 기념일때만큼은 특급호텔에 머무르려 해왔다.

이건 우리가족의 기념의식 같은 것인데 한해를 반성하고, 새해 목표를 계획하는 그런 일종의 이벤트인 셈이다.


(특급호텔 망설여질 때 팁 하나. 따로 통장을 하나 개설해서 매월 일정액(3~5만원)을 붓는다.

연말이 되면 꽤 목돈이 모인다. 때문에 별 부담없이 소비할 수 있다. 패키지 이용이 좋음)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들의 삶을 살고 싶었고,(물론 존경받는 부자) 그러기 위해서 자주 그러한 삶을 접하려 애써왔다. 우습지만 비싼 호텔에 머무르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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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나 실제 속셈은 다른 곳에도 있었는데, 진짜 속내는 아내에게 최상의 것을 경험(향유)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쥐뿔도 없는 나와 결혼해주었는데, 비싼 명품은 못사주더라도 일년에 한번쯤은 최상의 것을 경험하게 해줄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나름의 논리였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축적된다면 미래의 멋진(?) 내 모습에 더욱 걸맞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욕심도 있었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나의 멘토는 조실부모하여 지긋지긋하게 가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수백억 부자에다가 시가총액 몇백억하는 건물의 건물주다. (이번에 하얏트도 그가 추천했다.)

그런 자산가도 이러한 과거가 있었다.


"총각시절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은 대부분 중고였다. 결혼 전 내가 아내에게 사준 첫 커피는 특급호텔 커피였으나 첫 음식은 청계천 벼룩 시장에서 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끓여주는 천원짜리 동태찌개였고 첫 선물은 그 시장에서 팔던 천원짜리 목도리였다. 결혼 전 나는 빚도 많았었기에 아내에게 와인 한잔 사준 적도 없다. 당신이 처녀라면 그런 나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내게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했다. 그 당시 내 처지는 빚이 많았기에(당시 동부 이촌동 25평 맨션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 여자에게 먼저 프로포즈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부모도 없고, 형제자매라고 몇 있지만 모두 미국에서 산다고 그러고, 일가친척도 없고, 학벌도 뭐 보잘 것 없고, 미남도 아니고, 근육질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칼 같은 성격에다가, 빚도 왕창 있다고 하는 나이 서른의 남자를 그저 자기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시티 보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프로포즈한 여자가 보석이나 명품을 좋아 하였을 리 있겠는가"
ㅡㅡㅡㅡ


지금의 화려한 모습에 반해 배우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재의 모습이 아닌 상대방의 미래가치(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더 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 전,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사업가인 나를 왜 만나느냐는 질문에

"몰라 그냥 망하지는 않를 것 같애" 라고 말하며 결혼해준 내 아내도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어쨌든 로비에서 글을 더 쓰려고 해도 배터리가 없어서 못 쓰겠다.

얼른 올라가서 하준이 재우고 와인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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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09938_10154933081061968_4501405666754143424_n.jpg 하이얏트 호텔, 좀 낡긴 했지만 고풍스러운 내부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한 상징성이 큰 호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