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준 vs 오두리
양평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두리와 하준이의 첫 만남이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좀 긴장했다.
왜냐면 요즘 개한테 물려 죽은 사건도 있었고,
아기와 개를 한공간에 두는 것의 위험성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두리는 나를 보고는 반가워했지만,
하준이를 보고는 맹렬히 짖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잠시 방에 가뒀다.
방에서 짬짬이 데리고 나와 안고 있어도 두리는 하준이를 보고 짖어댔고,
그때마다 하준이는 생전 처음 보는 주둥아리 튀어나온 괴수(?)에 쌩울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평소 같았으면 두리를 가둬두고 짖든 말든 우리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됐을 일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본 어느 영상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sbs 동물농장 인지 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영상에는 주인에게 학대 받은 개가
병원 의료진들의 정성어린 치료에도 마음을 닫고 벽만 바라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의료진은 전혀 영문을 몰랐고 안타까운 마음에 방송국에 제보를 한 것이었다.
결국 방송국은 동물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하이디라는 외국인을 주선해주었는데
그녀가 개와 교감을 시도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더이상 치료를 원치 않는데요.
그냥 내버려두래요. 더이상 버림받고 싶지 않대요."
그러자 모든 의료진들이 눈물을 흘렸고, 카메라 감독도 질질 짰다. 이후 하이디의 주관 아래 의료진들이 개와의 소통을 시도하였고 이윽고 개는 마음을 열고 등을 돌려서 의료진들을 바라보았다.
이 영상은 나에게 상당한 쇼크를 줬다. 두리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미안하면 대충 고기나 간식 좀 던져주고, 달겨들면 혼쭐내서 서열 확인시키는 것만 했지,
실제 두리가 나에게 끊임없이 시그널을 보내며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는 것을 -머리로만 알았지-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7살의 중견(?)인 두리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오늘 처음 보는 저 아기만 빼고 모두 나의 식구다. 그런데 저녀석 하나 때문에 내가 방에 갇혔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나의 적이다.'
혹은
'저 녀석이 내가 가족들에게 받는 사랑을 빼았아갔다. 고로 나의 적이다.'
일수도 있겠지..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하준이가 내 아들이고 너와 같은 식구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두리를 내놓을 때마다 하준이가 우는터라 그것은 불가능했다.
집에 가기 직전, 나는 두리를 꽤 오래 안고 있었다.
그리고 하준이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 서서 하준이가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사랑받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자 시종일관 심장이 쿵쾅대고, 헥헥거리며 흥분하던 두리가 어느덧 잠잠해졌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지만,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사랑을 받는 하준이를 보고 '저 아기도 우리 가족이구나' 라고 인정하고 적개심을 내려놓은 듯 했다.
헤어지기 전에 기념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두리 표정이 왠지 처량하고 서글퍼 보였다.
(이제는 심지어 사람 얼굴같이 보인다.-_-;;)
자신의 포지션을 잃었다는 상실감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내가 그렇게 느끼니 그렇게 보인걸 수도 있고..
어쨌든, 하이디의 교감능력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내가 하준이 못지않게 두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두리도 잘 알 것이다. 내가 정말 그렇다고 말해줬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