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아빠, 육아휴직하다.

by 파랑새를 찾아서

2014. 8. 8. 25세부터 8년 동안 쉼 없이 일을 했다. 그동안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나라는 존재, 가치를 내가 아닌 남들에게 인정을 받으려 했던 날들이었다.


2022. 1. 31. 지금 33세 나이가 된 지금 내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12개월 된 딸 그리고 귀여운 4살 된 강아지까지 총 세 생명이 있다.


작년 이맘때쯤에 아이가 태어나고 일상에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육아로 포기해야 되는 것들이 꽤나 많았다. 퇴근 후 갖는 소확행의 휴식시간들이 거의 날아가버렸다.

나 개인의 삶의 큰 부분이 아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나머지 부분들에 신경을 잘 쓸 수가 없는 때가 잦곤 했다. 물론 현명한 아내의 어진 육아로 육퇴 후에는 아직 소확행의 휴식시간들이 겨우 유지되고는 있지만.


아내는 오죽했을까.

육아휴직을 하고 하루 내도록 오롯이 육아에만 전념하는데 '과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당시에는 사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육아에 있어 나름의 합법적인 도피처가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그랬던 내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바로 지금, 육아휴직을 하고야 말았다.

내 인생에 육아휴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딱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일에 있어 꿈이 있었고 나름의 야망이 있었다. 승진도 초고속은 아니지만 적당히 빠르게 해왔다. 남들에게 일로써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컸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도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꽤 큰 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마음속에서는 늘 우선순위였다.

일과 육아 중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항상 육아를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약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육아를 하면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고 나는 육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부서 이동을 결정했다. 하지만 부서 이동만이 육아에 큰 보탬이 되어주지는 않았고 곧 끊길 아내의 육아휴직 수당과 같은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하여 아내와 고심 끝에 아내는 복직을 하고 내가 휴직을 하기로 된 것이다.


육아휴직. 육아휴직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제 직장에서 동기나 후배들보다도 승진이 많이 뒤처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복직 후에도 내가 원하는 부서나 남들이 쉽게 갈 수 없는 부서를 또 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남들은 쉼 없이 자기 계발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데 나는 삶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순전히 일적인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아내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아내는 출산하기 전부터 휴직을 하면서 육아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희생당하고 있는데 옆에서 긍정의 기운을 내뿜으며 도움을 주지는 못 할 망정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정말 어떻게 살고 싶은 지를 생각해봤다.

최근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나도 잊고 지냈던 어릴 적 부정적인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 나의 다소 미성숙한 모습들은 어쩌면 그로 인한 것은 아닐까?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들.

그래, 나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다.

그리고 나의 미성숙한 점들이 때때로 내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사실 제일 힘들고 고통을 받는 건 바로 나 자신이기에 이 부분까지 내 아이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기에.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직장 동료, 선·후배들의 인정을 쫓는 것은 빈번히 힘들지만 결과는 달콤하다. 하지만 달콤한 맛이 가시고 난 뒤에는 이미 맛을 본 것보다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는 마치 끝없는 질주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감수, 포기해야 될 부분들은 늘어날 테고. 아내와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난 입신양명에 있어 그렇게까지 큰 뜻은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직장 8년 차 되어보니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이루어나가는 것보다 적당히 강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꽤 많았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더 가치 있는 일. 내가 지금 하기로 한 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벌써 행복하다. 휴직기간 동안 사랑스러운 딸을 종일 볼 수 있어서.

오늘은 혹시나 싶어서 윙크를 가르쳐봤는데 두 눈을 '꿈~뻑'이며 곧잘 따라 하길래 정말 귀여워서 한참을 웃었다.

아마 휴직기간이 끝나갈 즈음엔 사랑하는 딸내미 보고 웃느라 져버린 눈가 주름이 더 늘어나 있겠지?


그렇게 한 줄, 한 줄 웃음 나이테가 늘어가는 것.

이게 바로 행복하게 늙어가는 것이자

진정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