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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운양반 Jun 19. 2017

떨어진 성적과 부진한 실적을 대하는 현명한 태도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뿐..

학창시절 성적표만큼 결과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회사에서는 실적이라는 것일게다.

형식적으로는 매월 나오는 손익계산서가 학창시절의 성적표와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로 계량화 되는 결과물 이외에도 많은 결과들을 현재의 시점으로 받게 될 것이고, 받고 있다.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성이라는 것도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결과의 불안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시험이 끝나면 자신의 성적을 알게 되지만 성적표로 최종 결론에 다다르기 전까지 보류된 결론에 대하여 조금의 기대와 함께 기다리게 된다. 이미 불변의 결론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불안감은 성적표로 서면화 되어 마치 사형선고문같은 성적서를 보고 보이게 될 부모님의 반응이다.

이 도래하지 않은 반응마저도 갑작스런 고함, 걱정의 한숨, 그리고 준비되었던 눈물의 순서로 마무리되고 나면 더이상 나를 괴롭히는 불안은 마무리된다.


학창시절만이 아니라, 어른의 일들도 비슷한 모양을 가진다.

매월의 손익계산서의 과정이 학창시절 성적서와 같다.

회사라는 곳도 손익계산서로 표현되는 결과물이 나쁘면 평가로 이어지고 승진과 급여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도 당분간 회사의 소속이 바뀌게 되지는 않지만, 나쁜 경우 그 회사를 떠나게 된다.

상급학교의 진학과정이 성적에 크게 좌우되는 것을 보면 이것도 비슷하다.


두 경우 모두 가장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결과. 그것도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는 어떤 것인가? 더우기 가장 좋은 결과는 또 어떤 것일까?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보자.

학창시절을 시험의 성적으로 가늠하는 것은 무리임에 틀림없지만, 수치적으로 확인이 가장 쉬운 시험을 가지고 생각을 해 본다.

시험에서 좋은 결과는 당연히 높은 성적일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은 올백일게다.

하지만, 올백을 가장 좋은 결과로 마무리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여전히 남는다.

시간과 공간 속의 우리는 하나의 명사적 결과로 완벽하게 안정된 상태로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결과는 다시 다음의 결과를 향하여 이미 가고 있다.

우리는 결코 백점의 숫자 뿐아니라 어떤 숫자의 부동의 상태에 머무를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조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현재뿐이다.

결과의 원인이 된 어제의 일을 오늘에서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현재의 결과에 불만이라고 하더라도 어쭐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어제의 시험의 결과로서 받아든 오늘의 성적표는 불가역적인 것이다. 결국 좋은 결과이건 더 좋은 결과이건 오늘의 현재의 사람으로서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게 된다.

올백의 성적표를 들고 기뻐하거나, 기대이상의 순이익을 낸 손익계산서를 들고 기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장 좋은 결과는 어제의 영향으로 받아던 오늘의 결과인 성적표 혹은 손익계산서를 가지고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대로 깨닫는 것일 것이다. 오직 조작 가능한 것이 현재 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성적표나 손익계산서가 오늘의 결과가 아님에 틀림 없기에 그 결과를 확인하고서 틀린문제를 모자라는 실적을 돌이켜 회복할 방법은 영원히 부재하다.


그렇기에 결과는 현재의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이며 오로지 그 결과를 감당하는 나만이 현재에 있을 뿐이다.


이것이 결과를 현재의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장 좋은 결과는 이 결과 위에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결과는 완료의 명사적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결과로 향하는 또다른 시작의 동사이다.


니체의 "영원 회귀"를 논의되는 여러가지 문제를 차치하고 간단화 하는 것이 무리일지라도 현재는 그의 최선의 결과이며, 혹시라도 우주가 다시 시작하여 진화의 과정을 다시 되풀이하는 동일한 조건이라면 나의 현재는 지금과 완벽한 동일상태에 도달할 것이라는 얘기로 단순화 해 버린다면, 후회나 아쉬움이 있다할지라도 나의 현재는 내 최선이 도달한 지점이라는 것이다.


내 딸아! 망쳐버린 중간고사는 잊어라. 기말시험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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