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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Mar 25. 2022

괜히

괜히 맑은 시작

3월의 시작은 2일부터. 하루가 더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휴일의 배치구조다. 희망의 끝에는 좌절도 깊다. 평소라면 화요일은 일하는 날인데도 화요일을 쉬고 나니 수요일은 약 세 배로 일하기 싫다. 1월 1일은 한 해의 시작이고 3월 1일은 학기의 시작이다. 두 달의 간격을 두고 동일 구조가 돌아왔다. 그래서 3월 1일에는 1월 1일에 느낀 것과 비슷한 참담함을 느꼈다. 벌써 새로운 학기라니. 벌써 봄이라니. 내가 있는 대학원의 경우 학기와 방학은 수업의 유무만 있을 뿐 달라질 것이 딱히 없는데도, 나름대로 학생이라고 개강일을 기준으로 사고가 나뉜다. 내 마음대로 2월까지는 한 해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쳐도 될 것 같다. 세운 목표를 엉망진창 뭉개고, 되는 일 없었지만 아직 2월이니까, 아직 방학이니까, 라며 합리화할 구석이 있었다. 3월부터는 정말 도망칠 곳이 없다. 2월 28일은 코로나로 인해 하루 재택을 하게되어 3월 2일은 4일만에 연구실 출근이었다. 연휴도 아니었고 방학도 아니었지만 마치 방학 마지막 날의 대학생과 같은 우울함이 밀어닥쳤다. 정정한다. 대학생의 3월에 고3 3월의 우울함을 더한 기분이다. 틀림없이 3월 2일의 기분은 폭풍우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3월 2일은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날씨로는 맑음에 가까웠다. 날씨가 부쩍 따뜻한데도 맑았고, 캠퍼스 곳곳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지만 막상 손대니 몇 가지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다. 일이 잘 풀리는 시즌은 아니다. 지난 금요일에 받아든 하반기 연구샘플의 분석결과는 방향키가 박살난 수준이었다. 연구보고서 최종제출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중간점검 때부터 불안불안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놀랍지는 않았으나 막막했다. 외면하던 연구보고서 양식을 열어서 아무 말이나 쓰기 시작했다. 망한 분석결과를 포장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으나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들었다. 이것이 성취 단계 중 우매함의 봉우리인가.



퇴근 후 2주만에 고정폴 트릭수업을 갔다. 폴을 활용한 안무 위주인 플로어테크닉 수업에 빠진 뒤로 정석적인 폴 트릭을 배우는 수업은 조금 등한시했다. 한창 트릭수업을 들을 때에 비해 폴 수업 자체를 듬성듬성 가고 있어서, 오랜만에 따라해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플로어를 위주로 수강하기도 했다. 플로어테크닉의 운동량이 상당한데도 근력운동 면에서는 정석 폴 트릭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폴 트릭수업은 워밍업부터 복근과 허벅지 근육을 쥐어짜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원장님 직강이었지만 학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수업은 고사하고 워밍업은 따라갈 수 있을까. 다행히 오랜만에 쥐어짜인 근육은 나름대로 제 기능을 해주었다. 메인 기술은 성공하지 못하고 추락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팔 힘이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성공할 것 같았다. 1~2월 수업을 워낙 못가서 폴의 정체기라고 생각했는데, 느리지만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3월에는 폴 학원을 더 열심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글을 쓸 때 ‘괜히’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아무 까닭 없이/실속 없이. 주로 부정적으로 쓴다. 괜히 하기 싫었다. 괜히 울적했다. 하지 말걸 괜히 그랬다. 어제는 신기하게도 ‘괜히’ 희망찬 날이었다. 근거는 없다. 스트레스의 원인이던 여러 요소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근자감이다. 긍정적 마인드와는 척을 지고 사는 내가 ‘희망찬 날’이라는 표현을 쓰는 날이 있다니,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것도 아무 이유 없이. 마지막으로 일상 속 희망을 말한 날이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절망에 찬 나날은 아니지만 희망은 부담스럽다. 일주일쯤 지나면 ‘괜히’ 희망찬 말을 했다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괜한 희망을 품었다. 걱정보다 괜찮은 시간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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