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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Oct 01. 2022

기대에 기대어

안부의 무게

스물다섯의 생일이 지났다. 생일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계획을 가득 짰다. 오전부터 북카페에 가서 오트라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휴가를 낸 김에 평일 낮이 아니면 가기 어려운 장소를 가고.... 그러나 정작 당일에는 오후가 되어서야 침대를 벗어났으며, 비는 시간에는 종일 축하 메시지에 답장하기 바빴다. 저녁에 다녀온 비건 식당의 가격대가 조금 있다는 점만 빼면 여느 휴일처럼 듬성듬성한 하루.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연락이나 만남을 썩 즐기지 않는다. 스몰톡, 그 중에서도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 스몰톡은 몇 번 이상 오고가면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애정도와 관계없이) 연락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부류이지만, 대놓고 하는 '읽씹' '안읽씹'은 예의에 벗어난다고 생각해서 이도저도 아닌 난관에 봉착한다. 작년 생일에도 축하메시지 답장에 손목이 얼얼할 만큼 긴 시간을 투자했기에, 이번 생일에는 모든 답장을 미뤄두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고려했다. 그러나 막상 자정부터 날아오는 메시지들을 보고 있자니 한시바삐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고마움이 차올랐다.


올해의 축하연락이 '친구고과'에 반영된다면 나는 좌천을 피할 수 없다. 지인들의 생일 혹은 합격소식을 알면서도 '시간 날 때 선물과 메시지를 고민하자'라며 미루다가 최대 2주까지도 늦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다가 건너뛴 생일도 분명 있는데 찾을 방도가 없으므로, 마음같아서는 어딘가에 공고를 올리고 싶다. <떼먹은 축하 정산하겠습니다. 청구해주세요.> 바라는 청구는 안 들어오고 관심종자라는 오명만 쓸 방안이라서 참았다. 이러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니라고 자조하는) 이공계 대학원생과 취업준비생의 하이브리드 신분은 '정신이 없다'에 대한 훌륭한 증빙이 되어주었다.

생일에 붙인 타투스티커

나의 지인 중에서도 '여유' '안정'과 가까운 사람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학기 중의 대학생부터 대학원생, 신입사원, 고시와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까지, 스물다섯 이쪽저쪽의 나이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일로 마음이 차있다. 그런데도 나를 위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줬다. 나의 상황을 떠올려 응원을 적고 취향과 가치관을 떠올려 선물을 골랐다. 내가 '여유가 없다'라는 핑계로 미루었고 때로는 피곤해했던 감정과 에너지의 소모를 기꺼이 실행했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한두 줄의 축하메시지에도 구구절절한 감사인사와 안부를 담아 회신했다. 별일 없냐, 나도 응원한다, 너도 행복해라. 그만큼 고마웠다.


걱정과 불안과 허영심으로 가득한 내게 타인의 '기대'란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기대받는 사람이라는 뿌듯함은 잠시, 실망에 대한 불안은 길게. 지금은 기대에 부응하기보다는 실망시킬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경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생일축하의 끝에 딸려오는 '너라면 잘 될거야'라는 응원의 말이 어느 때보다 부담으로 다가올 법 한데, 이상하게도 불안을 가라앉혔다. 본래 응원의 말을 들으면 그들은 내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응원의 말은 짧게 담아두고 내가 만들어낸 불안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더랬다. 뭘 모르는 쪽은 나였을지도. 돌이켜 보면 넘어질까 두려워 머뭇거릴 때, 덜컥 발을 떼게 하는 힘은 항상 근거없는 확신에서 나왔다.


누구는 꺾인다고 하는 시점.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시점. 그러나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나에게 앞날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나의 유동성이 좋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 믿어준다. 나에게 기대하지 않고 나를 아끼지 않는 사람은 나였구나. 가볍게만 보였던 인사치레가 쌓여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추고 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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