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마음, 충분히 행복한 마음을 남겨라
잠시 ‘더 많은 글들을 써놓을걸’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아이들의 성장일기였다. 두 아이를 가지면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갔던 일기들이 너무 짧아서 아쉽게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순간의 기록들이 나를 잠시나마 추억하게 하고 미소 짓게 만드니 그 또한 좋다.
추억의 사진 한장에도 많은 기억들이 새어나온다.
생각하면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고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는데 사진 속 내 모습은 환하게 웃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그렇게 웃고 있다. 왜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꼭 웃게 될까? 내 마음을 숨기기 위해서? 아니면 오래도록 남을 테니 이왕이면 예쁜 모습으로 남아야 되기 때문에? 정말 장난기 넘치는 사람 아니고선 대부분 모두가 웃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그렇게 보이는 모습은 항상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속마음은 어떨까? CT나 MRI처럼 우리 몸을 찍으면 몸의 상태가 나오듯이 우리 마음도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직 한 가지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게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마음이 행복해야 정말 그 행복이 밖으로 나오는데, 우린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웃는 느낌이다.
초대 미국 대통령 조지 워싱톤의 부인이자 미국 최초의 First lady인 마사 워싱톤(Martha Washington)은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대부분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관점에 달려있다.”
이처럼 행복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는 전혀 무관하고 자신의 관점이나 마음의 상태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행복이란 행복한 상태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충분히 즐겁고 살아가는 보람도 느끼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일에서도 충족감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 마음이 들어야 우리의 힘든 삶도 어려운 난관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가 있다. 나 또한 이 마음을 바꾼 사람 중 하나다. 물론 신앙의 힘도 있었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어줄 때 내가 행복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언젠가 나에게 이런 질문이 건네 졌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뭐가 제일 힘들었나요?”하고 물었을 때 순간 말문이 막혀 얘기를 하기 힘들었다. 말하기도 전에 내 안에 있던 감정들이 뒤섞여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심장을 요동치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 안의 감정들을 꺼내고 그 감정 속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내가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꾸 나를 꺼내면서 내 상처가 옅어지고 치유되고 또 덤덤하게 나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심리학의 원조인 알버트 엘리스 박사도
“우리들의 행복이나 불행은
그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달려있음에도
외부의 여건에서 기인한다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하면서
“환경은 바꿀 수 없으나 환경을 바라보는 태도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생각처럼 환경은 바꾸기 힘들다. 그러나 마음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마음을 바꾸면 환경 또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고 하나하나 바꾸며 나를 행복한 마음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이며 절망적인 오랜 감옥생활에서 포기하지 않고 72세에 감옥에서 나왔던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이제는 글쓰기로 행복해져라. 글쓰기는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쓰면 되는 것이다.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과 목적이 있다면 그건 결국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행복한가?
일단 써라. 글쓰기는 마술과도 같다. 내 안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지 않은가? 난 가끔 나의 글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멋진 문장이 나올 때도 있고 생각지도 않은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