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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캥 May 11. 2020

'범신론'에 대하여-1

그것은 부드러운 무신론, 또는 온화한 유신론

종교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종교 유무를 떠나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으면서도 세상을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 지침이 있다면? 거기에 범신론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어디에 계시냐가 무엇이 중요하냐, 그저 도덕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은 옳다. 하지만 현대 사상사의 발전에 있어 신의 존재 유무, 존재한다면 세상 안인가 밖인가에 대한 논쟁은 인간의 삶의 방향 전체에 영향을 주었던 중요한 사안이다. 이 중 신은 우주, 자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범신론에 대해 알아보자. 이 중 가장 유명한 철학자는 스피노자이니 일단 스피노자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보자.


바뤼흐 스피노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과 자연은 차이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 존재하거나 인식되는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신은 현실 바깥의 관찰자가 아니라 현실에 내재하는 모든 근원인 것이다. 이것은 당시 파격적인 발상으로 '위대한 신'이 확장 가능한 것으로 그 형체(데카르트에 따르면 '연장')를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전지전능한 신이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신=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 어느 날 스피노자는 길을 가다가 한 신도의 칼침을 맞고서야 스스로를 좀 조심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시대를 좀 앞서갔으니.


데카르트 얘기를 좀 덧붙이자면, 육체와 정신에 대한 둘의 해석은 180도 다르다.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이 철저하게 분리된 이원론을 주장하였고, 스피노자는 육체의 관념이 곧 정신이라고 생각한 일원론자였다. 현대에서 주목받는 것은 스피노자의 일원론 쪽인데 그 증거로는 우리의 생각(정신)에 따라서 변화하는 뇌파(육체)의 흐름을 들 수 있겠다. 현대 의학은 결국 육체와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증명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허황된 것이라는 생각도 안일한 생각이다(실제로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의 연결점에 대해 증명하지 못했다, 육체와 정신이 연결되는 부분을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이원론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데카르트는 육체의 감각에 대해 철저하게 회의하고 의심하여(방법적 회의) 철저한 인간 이성의 힘으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을 추구했다. 그러려면 인간의 관점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어떤 법칙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수학이다. 근대 수학의 발전은 이러한 확고부동한 법칙을 추구하는 합리론적 사상과 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데카르트가 육체와 정신을 연결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던(결론적으론 잘못된) 송과선(좌), 그 방법론을 통해 도입된 좌표 평면(우), 해석 기하학의 토대가 되었다.



기왕 데카르트 얘기가 나왔으니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아까 말했듯이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이다. 내가 보거나 경험한 것이 꿈속의 세계일 수도 있고 심지어 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없지 않나?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다만 유일하게 확실한 것 하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분명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이 방법론으로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또는 존재함을 증명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1. 나는 생각(인식)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

2. 어떤 관념을 정신 안으로 가져왔다면(인식), 그 관념의 원인 역시 존재한다.

3. 어떤 원인이 만든 결과가 그 원인보다 완전할 수 없다

  -ex) '삼각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삼각형은 생각 속의 '삼각형'보다 완전할 수가 없기 때문에.

4. 따라서 불완전한 모든 결과는 완벽하고 무한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5. 그 완벽하고 무한한 원인이 바로 '신'이다.


불완전이 불완전을 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원인의 원인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완전무결한 원인'에 의해 모든 결과가 나온 셈인 것이다. 사실 데카르트 이전에 이러한 유신론적 증명은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의 증명 5가지 중 하나로 등장했다.


최강의 뚱보, 토마스 아퀴나스


현상에 대한 인식과 원인의 탐구, 그리고 존재론의 발전은 동서양 구분 없이 이루어져 왔다. 데카르트가 현실세계와 존재에 의문을 가지기 전에 이미 동양에서도 '존재'라는 개념에 대해 탐구하지 않았는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접지몽, 장자가 나비인가, 나비가 장자인가.


흔히 현대 철학의 발전은 서양에서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지나치게 사대적인 생각이다. 인간의 사상사에 있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일방적으로 준 적이 없고, 오로지 독자적이면서도 상대적인 발전이 있을 따름이다.


꿈과 현실에 대한 동양의 사상은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이 동양 무술을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지.



다시 스피노자 얘기로 돌아가보자. 스피노자가 영향을 받은 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가 가지고 있던 사상이다. 스토아학파 사상에 따르면 우주는 완벽한 조화를 통해 움직이는 것이고, 이것은 만물에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구조의 우주에서 사는 인간도, 이성의 활용을 통해 지혜를 사랑하고 도덕을 추구하며 자연의 변화에 따라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논이 스토아(Stoa, 복도)를 거닐면서 사유해서 '스토아학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세네카에 따르면 완벽한 구조의 우주는 신의 일부이고, 따라서 우주에 사는 우리도 신의 일부이다. 제논은 여기서 더 나아가 완벽한 구조의 살아있는 이 세상을 만드는 존재완벽한 구조의 살아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우주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순환한다. 이것은 물, 불, 공기, 흙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완벽한 이성의 활용을 통해 움직인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이 캡틴 플래닛이 되어 지구를 지킨다.


결국 스토아학파의 신에 대한 정리는 지극히 유물론적이고, 지극히 범신론적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신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무한하고 완벽한 신이 무한하고 완벽한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은 신의 영역 바깥에 있는 일이고, 만약 우주가 유한하고 완벽하지 않다면 그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우주 바깥이 아닌 우주 그 자체이다.


유기체적 자연관에 근거한 범신론이 사회학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회학자 T.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에 따르면 사회도 유기체처럼  순환하고 진화한다.


이런 스토아학파에서 시작된 범신론을 답습했으니 스피노자가 무사할리가 없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우주 바깥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 그 자체이다. 따라서 신은 '빛이 있으라'라는 명령을 통해 현실을 창조한 것이 아닌, 원인 그 자체로 존재함으로써 현실을 창조한 것이다. 따라서 현실이자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명문화된 신의 율법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필두로 한 자연과의 조화를 목표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기적과 기도를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통제와 이성의 활용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신의 일부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일부인 우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신의 율법처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 반면에, 이성을 활용한 관조적 삶의 자세를 통해 자연의 율법을 지킨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스피노자는 같은 유태인에게 파문을 당하고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다. 당시에도 고달팠던 게 유태인의 삶임을 감안하면, 고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셈이다.


그야말로 철저한 왕따

  


자연에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고, 오로지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 판단된다. 다만 자연의 본성을 이해하고 윤리적 접근을 통해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사상이다. 선하지 않은 행동은 악이라는 개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행동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의 이성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칸트는 여기에 한마디를 보탰다.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하라(정언명령), 쉽게 말하면 "아니다 싶으면 하지 마라"


칸트의 정언명령은 스피노자의 사상에 하나의 통제를 심어주어 보다 도덕적인 삶을 강조함으로써 자칫 잘못 해석할 수 있는 인간 행동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스피노자와 다른 점은 인간은 자유 의지를 통해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삶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 자체가 목적이라는 스피노자의 주장과는 분명 대비된다. 삶의 방향은 스스로 결정하는 거라는 실존주의적 사고에 하나의 지침을 제공한 것이다.

 

모든 역사는 선도 악도 없으며, 오로지 승자에 의해 쓰였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의에 대한 다른 관점이 현대사회의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사르트르도 이기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실존주의에 대해서도 "실존주의적 인간은 타인의 실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설명하면서 주체적이되 이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 삶에 대해 제동을 건다. 결국 스피노자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자연의 질서와 더불어 사는 삶은 도덕적 준칙이 함께할 때에만 그 실천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범신론은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대한 것뿐만이 아닌 인간의 이성과 삶의 방향 전체를 안내하는 사상으로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철학은 인간이 무엇을 추구하며 사느냐, 혹은 추구해야 할 진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온 역사이다. 신학은 분명 그것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학문이다. 인간이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신적 접근은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한번쯤 들여다봐야 할 사항일 것이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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