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진화한다.
혀와 눈은 간사해 한 번 높아지면 내려올 줄을 모른다. 경험이 쌓여 다양해지면, 그만큼 기대가 높아지니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디나 차이나 타운이 있다. 중국의 음식은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세계 곳곳에 퍼져 각양각색 발전했다. 본토의 음식과 사뭇 다른, 저 멀리 런던 차이나타운의 음식도 여전히 중식이다. 변화의 폭은 그 나라에 녹아든 음식의 적응력으로 잡초 같은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똑같이 중식으로 아우름은, 이 나라 음식의 포용력이 그 땅의 넓이처럼 넓고 큼을 드러낸다. 중식은 그렇게 외연을 넓혔다.
타이완(台湾)은 중국 음식의 융합과 질적 변화를 샘플처럼 보여준다. 국공내전에 패한 국민당의 사람들이 타이완으로 도피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각각의 입맛으로 작은 섬에 모였으니, 음식은 합쳐지며 발전했다. 푸젠성(福建省)의 음식과 함께 '闽菜'로 통용되던 음식이 있고, 대륙 각지를 대표하는 요리가 공존한다. 일본의 영향 하에 단촐하고 깔끔한 변형도 거쳤으니, 섬의 기구한 역사와 함께 음식은 경쟁하며 적자생존했다. 타이완의 니우로몐(牛肉面)은 상하이, 쓰촨, 란저우의 맛이 한데 담겨 태어났고, 산베이지(三杯鸡)는 장시성(江西省) 본토의 것을 유명세에서 넘어섰다. 혹자는 타이완에서 중국 음식의 미래를 보니 과언은 아니다.
창이차이(创意菜)라 부르는 요리가 있다. 지역에 따른 음식의 분류를 거부하고 뜻처럼 '창의(創意(创意의 번체))'적인 음식을 만들어 낸다. 지역의 재료를 합쳐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조리법을 달리해 재창조했다. 중국의 것과 서양의 것을 조합함은 물론이어서 외관상으론 중식이라 부르기가 무색해졌다.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퓨전요리라는 비판에도 창이차이는 그 세를 넓혀간다.
일상의 요리는 다시 태어났다. 길거리 싼 값에 즐겼던, 일상의 가정식 음식이 고급 레스토랑의 주식이 되었다. 자찌앙몐(炸酱面)과 따오샤오몐(刀削面)은 더 화려한 색과 달큰한 맛으로 꽃단장했다. 더 이상 전통의 허울만을 쓴 시골 구석, 평범한 음식이 아니다.
보양(保養)과 양생(養生)의 개념도 음식에 담았다. 음식은 이제 그 영역을 맛에서 건강까지 넓혔다. 약재가 음식의 재료가 되고 음양의 조화를 생각해 조리했다. 면의 길이만으로 장수(長壽)면이라 칭했던 모습이 우스워졌다. 본래 중의의 약재는 먹고 마시는 음식에 기반하니 먹는 것으로 몸을 보하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은 '스랴오(食疗)', 먹는 것으로 치료한다 말한다.
그렇게 중식은 폭과 깊이를 더한다.
중국의 음식은 본래 지역색이 뚜렷하다. 성(省)별로 개성이 강한 음식은, 지역의 이름이 붙어 전국으로 퍼졌다. 지역이 상징하는 대표 음식이 있고, 연결되는 맛이 있다. 그 경계가 조금씩 옅어진다. 외연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며 새로운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각각의 장점을 취하니 맛의 경험은 다양해져 거스를 명분이 없다.
혀는 명분과 전통을 중시하는 고지식한 논리를 생각지 않는다. 간사한 입맛은 편견이 없어 솔직하고 정직하다. 그를 맞추려 중국의 음식은 지금도 진화하고 '창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