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民]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Prologue

by Kwan

民以食为天,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인생사 배고픔을 이겨낼 것이 무엇이 있겠냐만, 위 말의 상징성은 중국인의 음식에 대한 태도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중원의 주인은 끝없이 바뀌었고 천하의 주인은 황제였으나, 백성의 하늘은 먹을 것이었으니, 그를 해결해 준다면이야 주인은 누구라도 괜찮았다. 한족이 아닌 오랑캐 민족의 지배를 받아도, 민주정(民主政)이 아닌 1당 독재의 정치 체제 하에서도, 내가 배부르고 잘 살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는 태도다.
반대로 배고픔은 천지를 흔들었다. 땅을 일구는 농민이 들고 일어나 천하를 뒤집었다. 황제는 쫒겨 도망갔고, 나무에 목을 맸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라를 바꿨으니 먹을 것이 하늘임은 역사가 증명하는 이치다.

현대의 중국은 집단적 쏠림이 극에 달했다.
문화대혁명은 이념적 극단으로 온 나라를 휩쓸었고, 대약진 운동은 나라의 경제를 파탄내어 수천만이 아사(餓死)했다. 이어진 개혁개방으로 이제는 물자가 넘처나니, 한 세대가 배고파 죽는 사람을 보며 자라선, 음식이 남아 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음식이 하늘임을 인생을 통해 배웠고, 그 가르침을 자식들에 물려줬음은 물론이다. 비단 황제와 왕이 쫒겨났던 시대의 일이 아니다. 먹고 사는 일은 여전히 중국에서 하늘의 위치에 있다.

중국인에게 음식은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다양한 음식을 상이 부러져라 내어 놓는 건 손님에 대한 예의이자, 자기 과시다. 허리띠를 풀러 음식을 먹고, 식탁에서의 예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음식을 평하고 원산지와 가격을 따진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그 희귀성으로 고급 요리가 되었다. 음식은 나누고, 같이 즐긴다. 남은 음식은 포장을 해간다. 식도구가 불편하면 거리낌없이 손으로 갈비를, 가재를 집는다. 뼈와 껍질은 접시 옆에 고스란히 쌓인다. 과거 기름진 뱃가죽은 높은 지위와 신분의 상징처럼도 여겨졌다. 자칫 게걸스러움으로 보일 수 있는 경계선이 이들이 음식을 대하는 바탕이다.

한국에서 푸드 포르노(Food Porno)가 유행이다. 입을 벌려 음식을 밀어넣고, 쩝쩝거리며 음미하는 입과 얼굴이 클로즈업(Close-up)되어 화면에 가득하다. 체면과 교양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 쏙 들어갔다. 그저 나도 맛보고 싶다는 욕망을, 출연자의 음식평과 감흥으로 대리 충족한다. 그게 특정 식당이라면 내일부터 사람들은 그곳에 줄을 선다.
게걸스러운 식탐의 경계선은 우리 푸드 포르노의 수준이다. 경박하진 않다. 우리에게 대세 예능 프로로 자리잡은 장르가 아직 중국에선 크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어쩌면 중국인들에게 음식은 본래 그런 것이어서 일지 모른다. 먹는 즐거움은 인색의 가장 큰 낙(樂)이어서, 음식 앞에 체면을 놓지 않았다.

하늘과 같은 먹을 것을 여기 감히 소개한다.
지역에 따른 형평성, 단순한 흥미를 위한 독특성은 무시했다. 거창한 요리로서가 아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을 선별하여 넣었다.

중국은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소비된다. 대륙이라는 이름으로 황당하고, 무지하고, 무례한 이미지로 남거나 거대한 강대국의 영향력으로 포장되는 극단적 곡해가 남았다. 잘 모르면 무시하고 보는 건 정해진 이치다. 중국은 살펴봐도 잘 모르겠으니 공부를 한데도 이해가 어려워 두려워하거나 무시한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짐이 곡해를 상징하나, 오히려 그런 하나하나의 소감이 모여 커다란 코끼리를 묘사할 수 있다. 너무 커 버거운 상대는 시간이 들어도 천천히, 하나하나를 살펴봄이 답이다. 산발된 다양성으로 편차가 큰 상대는 이해하기보다 우선 받아들여야 함이 먼저일 수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 건, 중국의 음식이 궁금할 때건, 봐야하는 순서도 논리도 없으니, 열리는 페이지대로 잠깐씩 훓어봐도 좋겠다. 코끼리의 다리일 수도, 귀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keyword